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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세한도’ 기증한 문화재 수집가

입력 | 2020-12-09 03:00:00


외부와 단절된 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추사 김정희는 58세가 되던 해(1844년), 초라한 집 한 채와 소나무 두 그루, 측백나무 두 그루를 그려냈습니다. 세한도(歲寒圖)입니다. 고립무원의 유배지에 남겨져 있는 자신을 잊지 않고 청나라 연경(베이징)을 드나들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에 감동하여 답례로 그린 그림입니다. 권세를 잃고 외로이 지내는 자신에게 정과 의리를 보여준 제자를 겨울에 홀로 푸른 나무에 비유한 겁니다.

추사는 금석학(金石學)과 서화(書(화,획))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습니다. 추사체로 알려진 그의 독창적 서체는 독보적이었습니다. 청나라의 학자들이 그와 교류하기를 열망했을 정도로 추사는 청나라에서도 인기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추사의 부친은 전라도 고금도에 유배되었고, 10년 뒤 추사 자신도 제주도로 유배됩니다. 사대부 집안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던 추사에게 귀양살이는 무척 힘들었겠지요. 유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친한 친구 김유근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고, 아내도 하늘로 떠나보냈습니다. 지인들의 소식도 점차 끊어진 외롭고 황망한 상황에서 추사는 오직 책을 벗 삼아 지냈습니다.

그런 추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던 제자가 이상적입니다. 그는 청나라에 갈 때마다 책을 구해다 추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한번은 120권이나 되는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구해 보내주었습니다. 그 책을 받은 추사는 뭉클한 감정에 복받쳤다고 합니다. 그런 감정으로 그린 그림이 세한도입니다.

추사는 세한도에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고 썼습니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논어 자한(子罕) 편에서 따온 구절입니다. 추사 자신도 어려운 상황을 겪고 나서야 진정한 벗의 의미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한도에 찍힌 추사의 낙관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입니다.

추사의 그림은 이상적에게 전해졌고 이에 감격한 이상적은 연경에 사신으로 가는 길에 세한도를 품고 갔습니다. 추사의 처지를 연민하고, 이상적의 의리에 감동한 청나라 문인 16명은 그림에 감상문을 남겼습니다. 그 후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 등 국내 문인들이 쓴 감상문이 길게 붙어 지금의 세한도가 됐습니다. 당초 가로 70cm 길이였던 세한도에 여러 문인들의 감상글이 보태지면서 14.7m에 이르는 대작이 된 겁니다.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는 그림의 격조나 가치로 보아 조선왕조 최고의 문인화로 꼽힙니다.

문화재 수집가 손창근 씨(91·사진)는 올해 2월 세한도를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문화재청은 8일 손창근 씨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습니다. 문화훈장 중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 수여는 2004년 문화유산 정부포상 이래 처음입니다.

시인 도종환은 자신의 시 ‘세한도’에서 “견디며 깨어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겹게 아름답다”고 표현했습니다. 송년 모임과 성탄 분위기로 북적였을 거리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을씨년스럽습니다. 얼어붙은 세상이지만 추사와 이상적이 나눈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의지하며 이 겨울을 함께 견뎌냅시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