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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기업, 외부감사-공시의무 없는 ‘유한책임회사’ 전환 러시

입력 | 2020-12-09 03:00:00

한국법인 실적 숨기기 ‘꼼수’ 지적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의 한국 법인인 구찌코리아가 회사 종류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회계연도부터 적용되는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신외감법)에 따라 부여되는 외부감사, 공시 의무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구찌코리아는 지난달 24일 ‘구찌코리아 유한책임회사’로 회사의 상호를 변경해 등기를 완료했다. 1998년 주식회사로 설립됐던 구찌코리아는 2014년 유한회사로 전환한 데 이어 다시 회사의 종류를 바꿨다.

이는 지난해 11월 발효된 신외감법에 따른 유한회사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신외감법에 따르면 그동안 외부감사와 공시 의무가 없었던 유한회사도 매출이나 자본금이 500억 원 이상이면 올해부터 외부감사를 받고 매출과 이익, 배당과 기부금 규모 등이 기재된 감사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유한책임회사는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한회사와 유한책임회사는 주식 발행을 통한 증자,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한 대신 주식회사에 비해 광범위한 자율성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여기에 유한책임회사는 유한회사와 달리 이사 선임, 출자자 총회 등도 필요 없어 가장 자율적인 형태의 법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2012년 청년창업 등을 촉진하기 위해 상법 개정을 통해 유한책임회사를 도입했다.

국내 연매출 규모가 각각 조 단위에 이르는 샤넬, 루이비통, 구찌 등은 원래 취지와는 무관하게 회사 종류를 바꾸고 있다. 1991년 국내 법인을 설립한 샤넬코리아는 1997년부터 유한회사로 바뀌었다. 또 2012년 루이비통코리아를 시작으로 2014년 구찌코리아가, 2016년 프라다코리아가 회사 종류를 바꿨다. 당시 이들 업체는 국내 시장에서 꾸준히 가격을 올리면서도 많게는 순이익의 100% 이상을 본사에 배당해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여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유한회사로 전환해 실적을 숨겨 왔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움직임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구찌코리아 외에도 2017년 아디다스코리아, 지난해 이베이코리아와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가 각각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바로 바꾸는 건 상법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로 복귀한 후 다시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하는 ‘우회전환’ 방식도 쓰이고 있다. 구찌코리아는 올해 9월 18일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했다가 두 달 만에 다시 유한책임회사로 바꿨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는 지난해 11월 19일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로, 불과 이틀 뒤에 다시 유한책임회사로 바꾸면서 “드러내 놓고 제도를 악용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보 공개를 거부해 온 외국계 기업 한국 법인의 ‘깜깜이 경영’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 외에도 구글코리아, 애플코리아, 나이키코리아 등 국내에서 조 단위의 매출을 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들도 모두 유한회사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사이 샤넬, 루이비통 등 해외 럭셔리 브랜드를 비롯한 외국계 기업 한국 법인들이 잇달아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려 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신외감법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