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 못찾는 ‘의사국시 미응시’ 파장
대전선병원의 인턴 숙소인 ‘인턴 당직실’에 침대와 업무용 책상이 함께 배치되어 있어 휴식과 업무가 하나인 인턴의 생활을 보여준다. 바닥에는 야식용 컵라면도 보인다(위쪽 사진).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집단 거부에 대해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왼쪽부터)이 10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며 인사하고 있다. 대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동아일보DB
구자룡 논설위원
과거 인턴은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대기 상태였다고 대전선병원 김광민 감염관리실장(감염내과 전문의)은 말했다. 2015년 ‘전공의법’이 만들어져 그나마 나아졌다지만, 1주당 ‘80시간+8시간(긴급한 필요시)’이 법정 근무시간이다. 이마저도 제대로 안 지켜진다. 2018년 실태조사에서 수련병원의 3분의 1이 규정을 어겼다. 전국 240여 개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해 3000여 명의 인턴은 ‘수련’만 받는 학생이 아니고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서 궂은일을 하는 필수 의료 인력이다. 이 병원 인턴 C 씨는 “밤에 소변을 보지 못하는 환자의 요도에 삽관을 하거나, 발열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등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함께 병원의 밤은 우리가 지킨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내년 병원 인턴 2700여명 부족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6일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모집정원 공고를 내면서 레지던트 1년차 3399명은 발표했지만 인턴 정원은 공고도 못 했다. 내년 3월 1일 병원에 배치해야 하지만 전공의 파업 당시 의대 졸업생 대부분이 실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응시 대상자 3172명 중 미응시자는 2749명으로 87%였다.
의대 졸업생은 필기와 실기 시험을 모두 합격해야 의사 면허를 받을 수 있다. 내년 1월 7, 8일 치러지는 필기시험에는 실기시험 응시 대상자 3172명을 포함해 3196명이 원서를 냈다. 이제 실기 재응시가 진행되어야 한다. 10년간 4000명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하며 시험을 거부한 의대생들이 끝내 재응시하지 못하면 내년 각 병원에서 필요한 인턴은 최대 2700여 명이 부족할 수 있다.
의사 국시 실기는 준비와 시행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험은 마네킹 환자를 대상으로 채혈, 소변줄 삽입 등 50여 가지 시술 중 6가지를 각 5분씩 수행하는 ‘오스키(OSCE) 시험’과 환자 대역 배우 6명을 상대로 각각 10분간 진찰을 하고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임상 시험(CPX)’, 그리고 실기시험 간 쪽지 시험 격인 ‘사이 시험’ 등으로 이뤄진다. 수험생 1인당 3시간가량이 소요된다. 더욱이 서울의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서만 치르기 때문에 시험에만 2개월가량이 걸린다. 당장 재응시 결정을 내려도 내년 3월은커녕 5월까지도 인턴을 배치하기 쉽지 않다. 문제는 사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 전시’에 팔짱만
“정부와 의료계만이 아닌 국민 여론의 문제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의대생들의 국시 재접수를 반대한다.”(청와대 국민청원)
의대생 실기시험 재응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의료 대란의 초강력 태풍을 눈앞에 두고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10월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 성명)는 절박한 호소가 무색하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방역 최전선의 의료진 확보가 시급한 가운데 누구도 책임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는 졸업 예정인 의대생에게 의사 시험을 면제하고 8, 9개월 일찍 진료 업무를 시작하도록 한다. 방역 전쟁에 마치 ‘의료 학도병’을 투입시키는 듯한 이런 긴박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은 8일부터 2.5단계로 격상했고, 경찰에 처음 방역으로 을호 비상경계를 발령했다. 체육관 임시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야흐로 비상이다. 타국에 비해 백신 확보도 늦어 ‘국민적 방역과 의료진의 분투’로 상당 기간 버텨야 한다. 중환자 시설이 있어도 의료 인력 부족으로 치료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데도 2700여 명의 의대생들이 의사 면허증이 없어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한 해 인턴 결손 부작용 일파만파
재응시 문제가 풀리지 않아 인턴 배출이 한 해 늦어지면 우선 내년 3월부터는 의료 현장에서 의사가 부족해진다. 그런 데다 내후년에는 레지던트를 뽑을 인력이 없어 전공의 공백이 시작된다. 한 해 채우지 못한 그 공백은 레지던트 과정 4년간 연차가 올라가며 계속된다. 전공의 한 해 결손의 여파는 군의관 보충 차질로까지 연결된다. 전공의 파업으로 3차 의료기관의 응급실에 가지 못해 병원을 옮겨 다니다가 증세가 악화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 한 해 의사가 배출되지 않으면 2000명 이상의 전공의가 4년간 파업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빚어진다.
올해 인턴에 올라가지 못한 의대생들은 내년 하반기 후배들과 인턴 경쟁을 벌이게 되면서 2000명 이상이 수련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가 부족하고, 상당수 인원은 외부에서 떠도는 의료 인력의 비효율과 낭비가 지속되는 것이다. 의료 인력은 한 해 시험을 보지 못하면 다음 해에 모두 합격시켜서 털 수 없는 특성 때문이다. 이런 의료 인력의 왜곡 현상이 빚어내는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환자들이다. 신규 의사 면허자가 한 해 없어지면 의료 취약 지역 공중보건의 배치에도 비상이 걸린다.
“사실상 답이 없다”
연세대 의대의 경우 신촌세브란스병원만 한 해 필요한 인턴 인력이 100여 명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이번에 실기시험에 응시한 학생 400여 명을 기존 배치 비율대로 복지부에서 배분받는다고 해도 10명도 채 안 돼 진료 현장의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선병원 김광민 실장은 “6, 7명의 인턴을 뽑지 못하면 어떻게 메울지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보건 당국이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방안 중에는 ‘공개된 불법’이라는 말까지 있는 ‘PA(Physical Assistant) 간호사’의 활용이 있다. ‘PA 간호사’는 간단한 봉합 등 의사가 해야 할 일을 간호사가 돕는 것으로 비공식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나 이를 공식화하거나 합법화하는 데는 의사들의 반발이 크다. 여당 의원은 이를 엄벌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복지부에서도 단속을 강화하는 지침을 내놓기도 했다. 아쉬운 대로 땜질을 할 수 있는 궁여지책이라지만 갈 수 없는 길이다.
전공의들의 야간 당직을 대신할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의사가 야간 당직만을 맡게 하는 것이다. 적정한 수가 책정도 안 되어 있고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인턴이 없으면 레지던트가 대신하고, 전공의가 할 일에 교수들이 투입된 것은 전공의 파업 때 벌어졌던 현상이다. 하지만 교수가 전공의 업무에 투입되는 만큼 진료나 수술이 줄어들거나 피로가 쌓여 장기간 지속할 수는 없다.
환자 생명-국민 건강이 최우선
지금 상황은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어느 쪽이 백기를 들고 나오라고 할 수도 없다. 학생들은 2번이나 연기된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지만 대한의사협회 김대하 대변인은 통화에서 “명분이 있었던 만큼 시험 거부 외에 달리 의사 표현 수단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비판적인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능후 장관이 재응시 허용을 위해서는 “국민의 양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다.
정부는 여론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여론 뒤에 숨거나 끌려가기만 해서도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상당 기간 계속되는 가운데 의사 부족으로 인한 의료 공백으로 예기치 못한 환자의 피해가 발생하면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디에서부터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지금 준비해도 의료 공백에 대비할 시간은 빠듯하다.
대전=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