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일반인 접종을 시작하면서 각국의 백신 확보 및 접종 속도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및 유럽 국가들이 보건당국의 백신 승인 및 배포의 마지막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벌써부터 백신 암거래나 가짜 백신을 주의하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 불붙는 백신 전쟁… 바이든 “취임 100일 내 1억 명 접종”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9일(현지 시간)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백신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긴급승인 지침에 부합하며 안전성이 양호하다”고 밝혔다. FDA는 10일 외부 전문가 회의를 열어 화이자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따져본 뒤 긴급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 그런데 이에 앞서 백신의 안전성이 양호하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연 ‘백신 최고회의(summit)’에서 미국인들이 미국 제약회사의 백신을 접종할 우선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신 접종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이날 “(내년 1월20일) 취임 후 100일 이내에 최소한 미국인 1억 명에 코로나19 백신이 접종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자비에르 베세라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자를 비롯한 보건 분야 인선을 소개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대규모 백신 접종 계획이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캐나다는 이번 주 보건당국의 긴급승인을 받는대로 다음주부터 국민들을 상대로 백신 접종을 시작할 예정. 도미니크 르블랑 내무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백신의 해외 수출이 제한될 가능성에도 “캐나다가 확보해놓은 백신 공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햇다. 캐나다는 이달 말까지 24만9000회분의 화이자 백신을 공급받기로 했으며, 모더나의 백신도 4000만 회분의 구매계약을 체결해놨다.
일본도 백신 접종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후생노동성 간부는 9일 아사히신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올해 중에라도 접종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제약사의 승인 신청과 정부의 유효성, 안전성 확인 등을 감안할 경우 빠르면 내년 1월부터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도 20일부터 일반 국민을 상대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하기로 했다. 모로코와 브라질 상파울루주도 각각 이달 중순과 내달 말부터 백신 접종이 개시된다. 그러나 인구수는 많지만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인도, 남미, 아프리카 등은 백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수 13억 명에 달하는 인도는 누족 확진자가 900만 명이 넘어 정부 차원에서 백신 확보에 나섰지만 물량은 물론 유통 보급도 어려울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 EU “여러 백신 제품 필요”… 암거래, 가짜 백신 경고
백신 공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연합(EU)은 1개의 제약사 제품이 독점적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최대한 여러 제품을 승인, 활용하는 다수 백신(multiple vaccines)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EU 산하 유럽의약품청(EMA)의 에머 쿡 청장은 8일(현지시간) AP통신에 “EU 차원에서 화이자 백신은 이달 29일, 또 다른 백신인 모더나 백신은 내년 1월 12일 경에 긴급사용 승인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팬데믹을 막기 위해서는 내년까지 여러 개의 백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너무 빠른 백신 개발과 확보전으로 안전성 문제는 여전하다는 게 EU 입장이다. EMA는 러시아나 중국이 만든 백신 데이터 제출을 받지 못해 EU에서는 접종을 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또 EU는 향후 안전성을 위해 예방접종 대상자는 1년 간 추적해 면역력 유지, 안전성 등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할 방침이다.
또 부족한 백신 초기 수량이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백신 암거래나 위조 백신이 활개칠 수 있다는 EMA는 경고했다. 대규모 접종이 시작된 화이자 백신과 조만간 현장에 풀릴 모더나 백신은 올해 생산량인 5000만회, 2000만회 투여분이 각각 선계약으로 매진됐다. 내년도 사정은 비슷하다. 화이자 백신의 내년 공급량 약 13억 만 회분의 90% 이상은 이미 유럽 일본 등 선주문으로 팔렸다.
실제 시노팜 등 자국 업체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긴급사용을 허용해온 중국에서는 이들 백신이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화이자 등 백신 접종이 먼저 승인된 미국 영국 등으로 여행을 가는 200만원 대 투어 상품까지 생겼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위르겐 스톡 인터폴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공급양은 정해진 반면 수요가 높은 코로나19 백신은 범죄조직에 ‘액체로 된 금’(liquid-gold)이 될 것”이라며 “백신 관련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