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이상했던 신년회견 대통령 답변 검찰총장 찍어내고 공수처 설치 민주체제 뒤흔든 리더로 기억될 것
김순덕 대기자
그때 문 대통령도 속으로는 백원우를 껴안아주고 싶었다면, 좀 복잡해진다. 나중에 백원우 재판과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솔직히 밝힌 심정이다. 대통령이 대단한 절제력으로 꾹꾹 눌러 표현만 안 할 뿐이지 실은 가장 과격한 386정치인과 같은 정서라는 의미여서다.
입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역사적 시간”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한국 민주주의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모습에 과거의 문 대통령이 겹쳐 보인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드디어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는 7일 발언을 곧이곧대로 듣다간 선진국 같은 제도개혁인 줄 알기 십상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청와대까지 치고 들어오기 전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개정법안부터 처리하라는 돌격명령을 문 대통령은 너무나 고상하게 표현했다.
그러고 보면 집권 4년 차에 이르도록 문 대통령의 말과 실제는 늘 딴판이었다. 선하고 신중해 보이지만 거칠게 말하면 위선이다. 대통령의 성격 때문이라면 위험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과대망상적 성격에서 포퓰리즘 정치와 현란한 거짓말이 튀어나왔듯, 국정의 성공과 실패에 대통령 성격이 큰 몫을 한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2015년 심리학자 김태형은 심리적 의존 상대가 필요한 정치인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난 뒤 그 말이 그 뜻임을 알고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고 2017년 대선 전에 내놨던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에서 분석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느라 아프고 힘들어도 말을 못했고, 그래서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거다. 문빠의 끔찍한 사랑이 대통령에게는 양념인 이유다.
정치하기 싫은 문 대통령이 오로지 정권교체를 위해 386운동권에 택군(擇君)을 당한 사실은 유명하다. 당연히 측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백원우 같은 행동대장 겸 복화술사가 예쁘고 고마웠을 터다.
정치는 잘할 자신도 없다던 문재인을 대통령 만든 사조직이 386운동권 선거 캠프였다. ‘문재인의 운명’을 쓰도록 이끈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광흥창팀 10여 명 중 상당수가 그대로 ‘청와대 정부’가 됐다.
퇴임 후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으냐는 신년회견 질문에 문 대통령은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면 참으로 나오기 힘든 소리다. 주변에서 어른대는 냄새에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잠재의식의 발로가 아니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뒤흔든 대통령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문 대통령은 “대통령 끝나고 난 이후 좋지 않은 모습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마무리해 기자들을 웃게 했다. 그러려고 공수처 설치에 기를 쓰는 모습이 슬플 따름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