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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北, 협상 장애물 찾는데 몰두… 많은 기회 날려”

입력 | 2020-12-11 03:00:00

강연서 ‘北 협상 태도’ 공개 비판
“北 핵포기땐 인도태평양지역 편입… 종전선언 협상-연락사무소 설치에
北번영 위한 경제교류까지 제안… 핵폐기 로드맵 거부해 협상 결렬”




비건, 단골 닭한마리 식당서 저녁식사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닭한마리’ 식당에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고려해 비건 부장관의 단골 식당을 통째로 빌렸다.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양옆 테이블들은 간격을 띄웠으나 차단막을 설치하지는 않았다. 외교부 제공

“유감스럽게도 북한의 (내) 협상 상대들은 많은 (합의) 기회를 날려버렸다(squandered). 그들은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데 너무 자주 몰두했다.”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10일 아산정책연구원 강연에서 “우리가 2년여간 (북한과의 협상에서) 성취하지 못한 것에 실망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며 이같이 밝혔다. 비건 부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의 전면에 나섰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따른 교체를 앞두고 마지막 대북 메시지에서 북한의 협상 태도에 대해 작심하고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한 것이다.

비건 부장관은 비핵화 대가로 미국이 한국과 함께 북한에 제공하려 했던 관계 정상화와 안전보장, 대북 제재 완화를 통한 경제 지원 방안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화학·생물학무기를 포기하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편입될 것이라고 했다”며 “이를 위해 종전선언 협상, 군사적 신뢰 구축, 군사훈련 참관, 군사 교류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 연락사무소를 워싱턴과 평양에 설치하는 방법들까지 있었다”고 했다. 또 “한국과 협력해 (북한에 대한) 투자 유치, 인프라 발전, 식량안보 증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약속한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 교류와 무역도 제공하려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북-미 협상은 북한이 북핵 폐기 목표와 이를 위한 시간표(로드맵)에 합의하는 것에 거부해 결렬됐다는 것이 비건 부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비핵화) 행동을 위해 로드맵을 짜는 것과 로드맵의 궁극적 목표에 동의해야 한다고 북한에 말했다”고 전했다.

비건 부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톱다운 방식의 담판에 한계가 있었음도 시인했다. 그는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문제점은 안타깝게도 (북한의) 협상팀이 비핵화를 논의할 권한과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상회담의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그 전에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진전 방안을 실무진이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며 “이것이 2년 반의 교훈이다. 북한이 이를 배우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고문으로 사망한 미국인 오토 웜비어 씨가 “살아 있었다면 12일 26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이라며 일본인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 씨 등 북한 인권 문제를 길게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2년여 좌절과 실망, 잃어버린 기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처음 공유했던 한반도에 대한 비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며 “새 팀(바이든 행정부)과 내 모든 경험 및 힘들게 얻은 지혜를 완전히 공유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비건 부장관은 “한미는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 주권 국가들이 강압을 받지 않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며 한미동맹이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성격으로 변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다.

그는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 민주주의의 닻(anchors)”이라며 “한미동맹은 팍스 인도·퍼시피카(Pax Indo-Pacifica)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70년의 전략적 근거에 기초한 동맹이 향후 70년에는 통하지 않을 것임을 모두 동의할 것”이라며 “방위비 분담금 협상 갈등,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와 조건에 관한 논쟁은 동맹의 미래지향적 목표에 대해 우리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 무능에서 생겨난 것”이라고도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