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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 넘게 월화수목금금금… “의료진 번아웃 넘어 그로기 상태”

입력 | 2020-12-11 03:00:00

일주일간 평균 확진 600명 넘어
“방역-의료대응 한계” 우려 커져




10일 대전 유성구 유성구청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유성구 공무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구청이 임시 폐쇄됐다. 대전=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환자병동에서 일하는 한 의사는 3개월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 10주 넘게 ‘월화수목금금금’이 반복 중이다. 번아웃(Burnout·소진) 상태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중환자가 늘면서 간호사들은 ‘나 때문에 환자가 숨질 수 있다’는 극도의 긴장 속에 근무하고 있다. 방호복 산소펌프의 배터리가 바닥났는지도 모르고 일하다 어지러워 쓰러지기도 한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나는 절대 양성이 아니다” “죽어도 격리될 수 없다”고 항의하는 사람들 앞에서 역학조사관들은 좌절한다.

지금 전국의 방역·의료 인력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현장에선 ‘질식 직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방자치단체의 일반 행정직원과 미처 경력도 쌓지 못한 의료진까지 투입되지만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이 무너지면 병상을 늘리고, 선제검사를 확대해도 소용이 없다.

10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682명. 최근 1주간 일평균 확진자 수는 628명으로 가장 많았다. 누적 환자 수는 4만 명을 넘어섰다. 3만 명을 넘은 지 불과 20일 만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방역과 의료체계 대응 역량이 한계에 다다를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 곳곳서 ‘방역-의료대응 한계’ 아우성 ▼

전신 보호복에 이중 장갑, 덧신, N95 마스크, 얼굴 보호막까지…. 감염을 막기 위한 레벨D 방호복은 온몸을 꽁꽁 싸매다시피 해야 한다. 통풍이 거의 안 돼 산소공급장치도 달려 있다. 잠시라도 쉬면 괜찮은데 계속 움직여야 하니 땀이 마를 틈이 없다. 피부 곳곳이 짓무를 수밖에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환자전담치료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그렇다. 전재현 병동 운영실장(감염내과 전문의)은 10일 “코로나19 중환자를 오래 진료하면서 의료진 대부분이 피부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 등 병 하나씩 달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내 몸도 힘들지만 치료약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를 보면서 우울증을 겪는 의료진도 많다”고 말했다.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1월 20일부터 326일째 확진자를 치료 중인 국립중앙의료원에는 10일 현재 위중증환자 28명이 입원해 있다. 국내 병원 중 가장 많다. 언제든 상태가 위험해질 수 있어 1명당 의료진이 최소 5명 이상 필요하다. 하지만 이곳 의료진은 의사 10명과 간호사 110여 명으로 빠듯하다. 전 실장은 “의사들은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일이 예사고 간호사들도 표준근로시간인 8시간을 훌쩍 넘긴 12∼15시간을 근무하고 있다”며 “환자 상태가 악화하는데 귀가시간이 됐다고 퇴근할 순 없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방호복 착용 권장시간인 2시간을 훌쩍 넘겨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방호복에 달린 산소공급장치 배터리가 소진돼 질식 직전까지 가거나 땀을 너무 흘려 탈수로 쓰러지는 간호사도 종종 있다. 전 실장은 “일부는 ‘번아웃(burnout)’을 넘어 일종의 ‘그로기(groggy·혼미) 상태”라고 말했다.

일일 진단검사 3만 건, 자가격리자가 7만 명에 이르면서 역학조사관 등 방역 인력의 피로도 극심한 상황이다. 확진자의 75% 이상이 발생하는 수도권이 심각하다. 서울시의 한 역학조사관은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으로 교체됐다가 혹시 방역에 작은 문제라도 생길까봐 차마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강의성 서울시 역학조사실장은 “과중한 업무를 계속하다가 결국 병가를 낸 직원도 있다”며 “대부분의 직원이 몇 달째 오전 6∼7시에 출근한 뒤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2월부터 서울시 역학조사관으로 일하는 주세경 서울시립보라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역학조사는 경험과 역량이 중요하다 보니 인력 교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인력을 총동원한 상황이다. 하지만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10일 기준 감염경로 조사 중 환자는 1609명으로 전날보다 133명이나 늘었다.

쏟아지는 업무도 힘들지만 현장 인력들은 지금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에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코로나19 전담병동 의사는 “다들 올해 말까지만 힘내자며 버텨왔다”며 “그런데 내년에도 한동안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당장 다음 달부터 그만두는 간호사들이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정부는 숨은 감염자를 찾기 위해 진단검사 무료 대상을 확대하고 수도권에 임시선별진료소 150여 개를 세우기로 하는 등 선제적 조치에 나섰다.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1차 유행 때와 달리 의료 및 방역 인력 지원은 충분치 않다. 급기야 대한간호협회는 3차 대유행 극복을 위해 10일부터 전국의 코로나19 현장에서 근무할 간호사를 긴급 모집한다고 밝혔다. 앞서 협회는 1차 유행 때인 3월에도 간호사 약 4000명을 모집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강동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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