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시내에서 한 시민이 전동킥보드에 탄 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뉴시스
김태성 사회부 기자
10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사거리 인근.
교통경찰관은 헬멧도 없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넌 한 20대 남성을 멈춰 세웠다. 경찰은 “전동킥보드를 탄 채 인도나 녹색불이 들어온 횡단보도로 주행하는 것은 범칙금 3만 원 부과 대상”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아직 이런 규정을 제대로 모르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라며 해당 남성은 주의만 주고 돌려보냈다.
일반 국민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살폈다면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이 만들어지진 않았을 테다. ‘신산업 육성’이란 취지 아래 법안 통과까지 국민들의 안전은 별일 아닌 듯 무시됐다. 전동킥보드 등과 관련된 교통사고는 올해 10월까지 688건 발생해 2017년 117건에 비해 6배 가까이로 늘었다. 지난해엔 473명이 다치고 8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학생 강모 씨(25)도 지난달 인도에서 걸어가다 부상을 입었다. 젊은 남녀가 함께 탑승한 전동킥보드가 쌩하고 달려오더니 그대로 강 씨를 들이받았다. 강 씨는 “그 뒤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몸이 움츠러들 정도”며 “안 그래도 위험한데 규제를 풀어주는 게 말이 되느냐. 중학생도 탄다니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음주운전 단속도 문제다. 원래 차량 음주운전과 동일한 처벌을 받았으나, 10일부터 범칙금 3만 원으로 대폭 낮아졌다. 실제로 9일 밤 서울 왕십리를 둘러봤더니, 불콰해진 얼굴로 공유 전동킥보드에 올라타는 이들이 상당했다. 대학생 박모 씨(25)는 “술 마시고 자주 이용한다. 음주 단속에 걸린 적은 없다”고 했다. 물론 정부도 손만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0일 ‘전동킥보드 안전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10일부터 공유 전동킥보드는 대여 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높이고 단속도 강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 소유 전동킥보드는 여전히 만 13세 이상이면 탈 수 있다.
결국 국회는 다시 법을 바꿨다. 이달 9일 면허를 가진 사람만 전동킥보드를 타도록 ‘도로교통법 재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개정안이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4월 시행되는 걸 감안하면, 지금부터 3∼4개월만 중학생이 전동킥보드를 타도 합법인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들의 갈팡질팡 헛발질에 국민만 애를 먹게 됐다.
김태성 사회부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