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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펼치고 돌리고 늘리고… 스마트폰 ‘거거익선’ 경쟁[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12-11 03:00:00

6인치대 ‘슈퍼 패블릿’ 전성시대




홍석호 산업1부 기자

“스마트폰이라기엔 너무 크고, 태블릿이라기엔 너무 작다.”

2011년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를 처음 선보였을 때 나온 미국 소비자 매체의 반응이다. 이듬해 갤럭시 노트가 미국 시장에 출시된 뒤에는 ‘어색할 정도로 커서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거나 ‘이 정도 크기의 물건을 얼굴에 대고 전화를 걸면 어리석어 보인다’는 조롱까지, 크기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해외 언론의 리뷰에 가득했다.

하지만 갤럭시 노트는 출시 두 달 만에 글로벌 시장에서 100만 대가 팔렸다. 출시 5개월 뒤엔 판매량 500만 대를 넘겼고, 최종적으로 1000만 대가량 판매됐다. 따가운 비판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던 갤럭시 노트의 크기는 5.3인치. 당시 5인치 미만 스마트폰이 전체 스마트폰의 99%, 4인치 미만 스마트폰은 85%를 차지했다.

그 후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스마트폰 시장의 트렌드는 ‘거거익선’(화면이 클수록 좋다)으로 바뀌었다. 갤럭시 노트의 출시와 함께 등장한 신조어 ‘패블릿’(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합성어·5인치대)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기 무섭게 패블릿 시장이 커지더니 지난해에는 6인치대 ‘슈퍼 패블릿’이 대세가 됐다. 올해 판매된 스마트폰 중 슈퍼 패블릿의 비중은 73.8%로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2025년에는 스마트폰 10대 중 9대가 슈퍼 패블릿일 것으로 내다봤다.

○ 6인치 스마트폰은 어떻게 대세가 됐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면은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2007년 애플이 3.54인치의 아이폰을 처음 선보였을 때는 스마트폰의 크기는 곧 아이폰의 크기를 의미했다. 2010년 4인치 크기의 갤럭시S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전체 스마트폰 10대 중 9대는 4인치 미만 크기였다.

애플은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했기 때문에 2012년 출시한 아이폰5가 딱 4.0인치로 출시된 후 2013년까지도 4인치대 스마트폰만 선보였다. 삼성전자도 2013년까지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 S시리즈는 4인치대를 선보이다가 2014년 S5에 와서야 5인치대를 내놨다.

5인치대 패블릿 시장은 2011년 갤럭시 노트5가 5인치대 스마트폰을 선보인 뒤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특히 큰 화면을 좋아하는 중화권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화웨이, 샤오미 등이 스마트폰 크기 경쟁에 뛰어들면서 대세가 전환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업체 관계자는 “2017년 화웨이가 애플을 제치고 잠시나마 스마트폰 시장 2위에 오르는 등 본격적으로 중국 업체들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7∼2018년부터 패블릿의 비중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2017년 삼성전자는 크기를 더 키웠다. 6.3인치 크기의 갤럭시 노트8을 출시하며 슈퍼 패블릿 시대를 연 것이다. 결국 애플도 2018년 첫 6인치대 스마트폰 아이폰XS 맥스를 내놓으며 ‘거거익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크기가 스마트폰 시장의 핵심 경쟁력이 돼 버리자 뒤처지지 않으려고 슈퍼 패블릿 시장에 뛰어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6인치대 스마트폰이 완전히 대세가 되는 순간이었다.

애플의 참전으로 달라진 건 슈퍼 패블릿 선호 경향이 아시아에서 북미와 유럽으로 전파됐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삼성의 갤럭시 노트 시리즈와 중화권 제조업체들의 판매량이 높은 아시아 시장이 슈퍼 패블릿의 주요 판매처였다. 하지만 애플이 슈퍼 패블릿을 선보이자 2017년까지 아시아(10.1%)보다 낮았던 북미(9.5%)와 유럽(9.6%)의 슈퍼 패블릿 비중이 2018년 각각 32.7%와 33.9%로 아시아(25.5%)를 넘어섰다. 슈퍼 패블릿은 2019년과 2020년 전체 점유율 중 68.3%와 73.8%를 차지하며 시장 내 압도적인 위상을 갖기 시작했다.

○ 사니까 만든다 vs 만드니까 산다


슈퍼 패블릿의 성장은 제조사가 만들어냈을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고객들이 큰 화면의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추세가 강해졌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한 스마트폰 업체 관계자는 “기존에는 20, 30대만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즐기는 경향이 강했다면 현재는 모든 세대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본다”며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이용자들이 큰 화면을 찾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또 영상을 보며 다른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도 스마트폰 ‘거거익선’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최근 스마트폰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 중 하나가 멀티태스킹에서의 편의성”이라고 말했다. 영상을 보며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기 위해선 큰 화면의 스마트폰이 필수라는 것이다.

반대로 일부 소비자는 슈퍼 패블릿 외엔 선택지가 없어졌기 때문에 큰 스마트폰을 구매한다고 했다.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이 모두 크기 때문에 슈퍼 패블릿을 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스마트폰의 크기가 커지면서 덩달아 출고가도 계속 인상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올해 출시한 플래그십 모델 갤럭시 S시리즈(S20, S20+, S20 울트라, S20 SE)는 모두 6인치대의 슈퍼 패블릿이다. 패블릿의 시대를 연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신작인 갤럭시 노트20과 갤럭시 노트20 울트라도 각각 6.7인치와 6.9인치에 달한다. 보급형 제품인 A시리즈도 마찬가지로 모두 슈퍼 패블릿이다. LG전자도 올해 출시한 스마트폰 7종 가운데 LG벨벳 등 6종이 6인치대다. 6월 선보인 Q31만 5.7인치다.

비교적 작은 스마트폰을 출시했던 애플은 10월 공개한 신제품 4종 중 3종이 슈퍼 패블릿이다. 아이폰12프로(6.1인치), 아이폰12프로맥스(6.7인치)는 전작보다 화면을 키웠다. 4종 중 유일하게 제품명부터 작은 사이즈를 강조한 ‘아이폰 12미니’조차 5.4인치 디스플레이로 출시됐다. 2011년 ‘너무 크다’는 비판을 받았던 5.3인치의 갤럭시 노트보다 크다.

크기가 커지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도 달라졌다. 제조사들은 스마트폰 크기에서 화면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노치(홈처럼 파인 화면) 디스플레이, 펀치홀(카메라 구멍이 뚫린 화면) 디스플레이 등의 디자인을 시도하며 버려지는 디스플레이 공간을 최소화하고 있다. 또 한 손으로 조작하기 어려워진 만큼 핑거그립, 핑거스트랩처럼 스마트폰 뒤에 부착하는 액세서리를 쓰는 사용자도 늘고 있다.

○ 이제는 화면을 접고, 돌리고, 말아 쓰나


앞으로도 스마트폰 화면은 계속 커질까. 업계에선 스마트폰의 크기가 더 이상 커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라는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6인치대 크기는 태블릿PC가 아니라 패블릿으로서 스마트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마지노선인 셈이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제조사들은 화면을 접고, 돌리고, 마는 시도를 하고 있다.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서 다양한 폼 팩터(스마트폰 제품의 형태)를 통해 디스플레이 크기를 키우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패블릿의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온 삼성전자는 우선 ‘접기’를 택했다. 지난해 첫 폴더블 스마트폰인 갤럭시 폴드(내부 디스플레이 7.3인치)를 선보인 뒤 올해 갤럭시 Z폴드2(내부 디스플레이 7.6인치)까지 출시하며 더 큰 화면과 편리한 멀티태스킹을 바라는 수요를 겨냥했다.

LG전자는 올해 ‘돌리기’를 선택해 전략 스마트폰 ‘LG 윙’을 선보였다. 기본 화면 자체가 6.8인치 슈퍼 패블릿 크기를 유지하면서, 가로로 눕히는 ‘스위블 모드’를 사용하면 멀티태스킹에 최적화된 4인치 세컨드 스크린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을 접고, 돌린 뒤 업계의 시선은 ‘말기’로 쏠리는 분위기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오포는 지난달 롤러블폰 시제품을 공개했다. 6.7인치 화면을 펼치면 7.4인치까지 커진다.

마는 스마트폰을 실제로 상용화하는 주인공은 LG전자가 한발 빠를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9월 LG 윙을 공개하는 행사 말미에 롤러블 스마트폰 출시를 예고한 바 있다. LG전자는 이르면 내년 3월 롤러블 스마트폰을 선보일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관련 특허를 출원하는 등 유사한 형태의 제품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서울 서초구 우면동 연구개발(R&D)캠퍼스에서 주재한 디자인 전략 회의에서 쥐고 있던 스마트폰 시제품이 ‘익스팬더블 스마트폰’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며 화제를 모았다.

스마트폰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슈퍼 패블릿 이후 시장을 주도할 제품의 폼 팩터에 대해선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폴더블에 이은 롤러블 스마트폰에서도 각 제조사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석호 산업1부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