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게 돌아올 날을 묻지만 아직은 기약이 없다오.
이 가을 파산에는 밤비가 내려 연못물 그득 넘쳐나네요.
어느 때면 서창에 앉아 오순도순 촛불 심지 다듬어가며
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군문귀기미유기, 파산야우창추지
何當共剪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 하당공전서창촉, 각화파산야우시.
- ‘밤비 속에 북으로 부치는 시(夜雨寄北)’이상은(李商隱·812~858)
비 내리는 가을밤, 시인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를 향해 연가(戀歌) 한 가락을 뽑는다. 오늘 비 내리는 이 파산(巴山)의 밤을 내가 어떻게 외로움을 달래며 보내고 있는지, 가을비에 넘쳐흐르는 못물처럼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애틋한지, 우리 나란히 창가에 앉아 촛불을 밝히는 날 도란도란 회포를 나눌 수 있으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고운 님 오신 날 밤 굽이굽이 펴’(황진이)듯이 상봉의 그날을 위해 이 밤의 연모와 설렘을 꼬깃꼬깃 마음속에 갈무리해두리. 말투가 다정다감해서인지 시는 비 오는 타향의 가을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혀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아니다. 재회의 기약은 없을지라도 초조해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달뜬 기대감에 부풀어 있어 훈훈한 안도감마저 느끼게 해준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