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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소녀들과 일본의 제4차 한류[이즈미의 한국 블로그]

입력 | 2020-12-11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얼마 전 중학교 교사인 일본의 친구로부터 “이번에 우리 학교 도덕 선생님이 교재에 ‘J.Y.Park さん(상)’이 했던 말을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J.Y.Park さん’이란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이다. 50대인 내 친구의 설명을 듣다 보니 많은 일본인이 왜 그를 친근하게 부르는지 알게 됐다.

요즘 박진영은 일본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음악 프로듀서다. 그는 올 2월 일본 소니뮤직과 함께 ‘니지(Nizi)프로젝트’라는 오디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대대적인 미션을 통해 아홉 명의 10대 일본인 소녀를 선발해 ‘니쥬(NiziU)’라는 그룹을 만들었고, 이달 2일 일본의 메이저 무대에 데뷔시켰다. 이 그룹의 실력 있고 발랄하고 착한 모습에 인기가 높아졌고, 이례적으로 정식 데뷔하기 전 일본 NHK의 연말 간판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 선발됐다. 그 이유에 대해 “올해 들어 니쥬의 이름을 듣지 않은 날이 없을 만큼 화제가 됐고, 인터넷상에서 동영상 재생 횟수, 데뷔 전 발표한 ‘Make you happy’의 반향 등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8일에는 데뷔 싱글 CD ‘Step and a step’이 오리콘차트에서 31만2000장이 팔렸다. 그 결과 오리콘차트 첫 등장에 1위, 여성 아티스트 역대 2위의 성과를 냈다. 이미 그들의 전속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니쥬’ 못지않게 박진영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니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출연한 소녀들을 향한 박진영의 적절한 지적과 말들에 공감했다.

“재능이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과정이 결과를 만들고 태도가 성과를 낳은 것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모두 특별한 존재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하지 않았다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진실’은 감추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할 수 없는 언어와 행동은 카메라가 없는 장소에서도 해선 안 됩니다.” “‘성실’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겸손’은 언어와 행동의 겸손함뿐만 아니라 마음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남의 단점을 보지 않고 장점만을 보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가 일본어, 한국어, 영어 등 3개 언어를 섞어가며 전달하는 내용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쏙쏙 새겨졌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다고 얘기하며 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자세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특히 ‘겸손’의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길을 끌었다. 겸손이 지나쳐 자신을 비하하기 쉬운 일본인들에게는 ‘겸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함께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이런 태도와 발언에 늘 따뜻한 애정이 느껴져서 젊은이들에겐 이상적인 지도자, 비즈니스맨들에겐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으로 여겨졌다. 그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기도 했다.

일본의 제4차 한류는 영화 ‘기생충’이 올 1월 10일 개봉되면서 시작됐다. 현대사회의 그림자를 재미있고 기발하게 전개시킨 높은 작품성에 많은 일본 사람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눈을 떴다. 그리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 등을 통해 위안 받고 용기를 얻었다. 동시에 소설 ‘82년생 김지영’ 등 K문학의 인기도 서서히 일본인들의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시기에 보여준 니지 프로젝트는 한국적인 치열한 실력 서바이벌이면서 노래와 춤의 실력을 겨루는 스타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외에도 참가한 사람들 개인의 인품을 중요시한다는 기준이 공감을 불러일으켜 일본인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감동과 공감은 어느덧 10대나 중장년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신뢰로 깊이 뿌리내렸다.

올해 일본에서는 한국 콘텐츠를 배우고자 한국의 장점에 좀 더 큰 관심을 갖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것이 제4차 한류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같이 한국인의 인간 철학은 일본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려 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동아시아의 리더로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보완하며 함께 성장한다면 두 나라의 문화적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