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의 서울남부보호관찰소에서 직원이 모니터에 표시된 보호관찰 대상자의 동선을 확인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조두순은 정신질환 판정을 받지 않았지만 심각한 반사회적인 성향과 성도착증 증세를 보였다. 조두순은 2017년부터 2년 동안 심리치료를, 출소 전엔 150시간의 집중 치료를 받았다. 출소하더라도 앞으로 7년 동안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전담 보호관찰관의 1대1 밀착감시를 받아야만 한다.
문제는 조두순만큼 관심과 관리를 받지 못하는 다른 출소자들이다. 전문가들은 치료감호나 보호관찰 종료 후 사회로 복귀하는 정신질환 범죄자들의 상당수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우려한다. 재범 가능성을 크게 낮추지 못한 채 사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법무부(관리대상자·범죄자)와 보건복지부(정신질환자)가 ‘핑퐁게임’을 하며 관리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 매년 정신질환 강력범죄 600여 건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정신질환 범죄자는 7763명으로 전년(7244명) 대비 7.2% 늘었다. 살인, 성폭력, 강도 등을 포함한 강력범죄자는 600명이고, 이 중 성범죄자는 384명에 달했다.
수치만 보고 정신질환자를 범죄 고위험군으로 낙인찍을 순 없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151%로, 전체 인구 범죄율 1.43%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강력 범죄만 따져도 정신질환자는 0.055%, 전체는 0.294%로 6배가량 차이가 난다. 통계만 보면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은 훨씬 낮다는 의미다.
문제는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의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데다, 재범을 막는 시스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중대 범죄를 저질렀거나 치료 및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 범죄자는 치료감호소에 수용되거나 출소 후 보호관찰을 받아야 한다. 치료감호소를 나온 뒤에는 지역 정신건강보건센터(이하 정신센터)에 등록하고, 상담과 진료, 사회복귀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올 8월 법무부는 치료감호 없이 보호관찰 명령만 받은 출소자도 정신센터 등록대상으로 포함시키는 내용의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정신센터 등록은 강제 조항이 아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정신센터 등록대상 범죄자 658명 중 320명(48.6%)만 등록했을 뿐이다. 절반 이상은 별다른 조치 없이 사회로 복귀했다. 이상민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료감호나 보호관찰이 종료됐을 때 재범 위험이 얼마나 줄었는지 더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며 “현재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 지역 정신센터로는 관리 역부족
정신센터에 등록된 이후도 문제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정신센터는 241곳. 조현병부터 우울증, 중독, 자살 위험군까지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를 관리한다. 사례관리 담당자 1인당 보통 60~100명을 맡는다. 기존 대상자를 관리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정신질환 범죄자까지 맡는 건 과도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치료감호나 보호관찰을 받을 정도면 사후관리가 필수인 강력범죄자일 가능성이 높다. 센터 직원 90% 이상이 여성인데, 성범죄 전과자를 개별상담하거나 자택을 방문하는 일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유라 수원시 성인정신건강복지센터 팀장은 “센터 직원들이 성범죄에까지 전문가일 수는 없다”며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출소자까지 센터에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수원시 성인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사례관리 대상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가정 방문 및 상담, 직업 교육 등의 서비스를 받는다.
전준희 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은 “중독, 자살 등 새로운 정신건강 이슈가 생길 때마다 지역 정신센터가 업무를 떠맡는데, 범죄자 관리는 직원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호관찰소와 정신센터 사이에 강력범죄 재발이 우려되는 출소자를 관리하는 별도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걸음마 수준 ‘치료 사법’
해외에서는 정신질환 범죄자를 정부와 사법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적극 관리한다. 인력과 시설을 더 투입해서라도 추가 범죄를 막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0~30년 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이른바 ‘치료 사법(Therapeutic jurisprudence)’이다.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1997년 플로리다주에서 시작돼 전국 350여 곳으로 확대된 ‘정신보건법원’이다. 유죄를 인정한 정신질환자를 석방한 뒤 지역 정신보건기관에서 치료하는 제도다. 판사가 정신질환의 호전 여부, 재범 가능성 등을 판단해 사건을 종료하거나 프로그램 연장을 결정한다. 주로 경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최근에는 더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신청을 받고 있다.
법 집행이 끝난 뒤엔 지역사회 보건기관이 사후 관리를 맡는다. 정신건강 및 약물남용 상담, 구직훈련 등을 받을 수 있다. 기관 직원 1명당 담당하는 일반 정신질환자가 30명가량인데, 정신질환 범죄자의 경우 직원 1명이 10명을 맡아 더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문제는 치료감호소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립법무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의 의사 정원은 15명이지만 현원은 8.5명(전문의는 1명, 전문의가 아닌 의사는 0.5명으로 계산)에 불과하다. 정신과 의사 1명이 담당하는 수용자는 121명에 이른다. 적절한 치료와 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엔 법원이 각종 중독이나 정신질환, 치매 등을 앓는 범죄자를 격리시키는 대신 치료를 병행하도록 판결을 내리는 사례도 적잖다. 하지만 ‘범죄자에게 지나치게 온정을 베푸는 것 아니냐’는 반대 여론이 커 적극적인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형기를 마친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치료를 위해 세금을 쓰고,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더 큰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의미다. 안성훈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아닌 이상 다수의 정신질환 범죄자들은 결국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며 “이들을 격리시키는 것뿐 아니라 재범 가능성을 낮춰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도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박성민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