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게임광고의 세계 그랑사가 광고 한달새 770만 조회 “재시청했다” “최고 어그로” 극찬 유저 사전등록 300만명 대박
유아인 등 유명인 13명이 출연한 모바일 게임 ‘그랑사가’의 동영상 광고. 엔픽셀 제공
‘연극의 왕’이라는 제목의 웹 드라마도, 쇼트폼 영화도 아닌 10분 남짓한 이 영상의 정체는 9분이 지날 때까지도 알 수 없다. 무대가 막을 내릴 무렵 3차원(3D) 캐릭터가 등장해 검을 들어올린다.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자극적 내용으로 관심 끄는 행위) 끌었다.”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그제야 새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그랑사가’ 광고인지 안다.
이쯤 되면 ‘낚였다’는 반응이 주를 이룰 법하나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지 한 달 만인 12일 조회수 770만 회, 댓글 3500개를 넘었다. 댓글에는 “10분짜리 광고를 끝까지 본 것도 처음이다. 광고를 검색해 다시 봤다” “올해 최고의 어그로” 등 찬사 일색이다. 그럼 광고의 목적인 유저는 얼마나 확보했을까. 정식 오픈 전인 이 게임은 사전등록자 300만 명을 모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 게임만 좋아서는 2% 부족?
게임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며 스타 마케팅과 B급 감성을 활용한 게임 광고들이 눈길을 끈다. 유명 연예인의 광고 출연은 몇 년 전부터 익숙하다. 하지만 멋진 정장을 입은 스타가 “지금 다운로드하세요”만 반복하고 하이라이트 장면만 편집한 기존 광고와는 다르다. 게임 광고만으로도 보는 맛이 있는 바이럴 필름(viral film)으로 진화한 것이다. ‘게임만 잘 만들면 유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셈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게임 출시 직후 광고 노출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제는 출시 전 사전등록 기간도 주요 광고 노출 시점이 됐다. 화제를 만드느냐가 광고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이병헌이 서부영화 총잡이로 출연한 슈팅게임 ‘브롤스타즈’ 광고. 슈퍼셀 제공
‘그랑사가’는 넷마블 게임 ‘세븐나이츠’의 핵심 개발진이 창업한 신생 게임사 ‘엔픽셀’의 데뷔작이다. 엔픽셀로서는 사활을 건 작품으로 초기 이용자를 빠르게 확보해야 했다. 그 1차 시험대로 광고를 택했다. 엔픽셀 관계자는 “신생 회사와 신규 지식재산권(IP)이 시장에 설 자리는 좁게 느껴졌다. 게임 자체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이목을 얼마나 끌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고 했다.
○ 스타도, 게이머도 “게임 광고 OK”
백종원의 얼굴을 합성해 수많은 백종원을 등장시킨 ‘V4’ 광고 영상. 넷게임즈 제공
‘연극의 왕’을 비롯한 게임 광고를 다수 제작한 기획사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감독은 최근 2, 3년 사이 급변한 게임 광고 시장을 현장에서 겪었다. 신 감독은 “몇 년 전까지 게이머들은 유명인이 광고에 나오는 게임은 기피했다. 게임사가 게임에 자신이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예인도 게임 광고를 비주류 영역으로 생각해 섭외에 응하더라도 ‘칼을 들지 않겠다’거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등 조건을 많이 달았다는 것. 신 감독은 “하지만 스토리를 입힌 광고가 인기를 끌고 흥행에도 성공하자 유저나 스타의 게임 광고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 과다 출혈 경쟁 우려도
게임을 출시한 뒤 개발사가 느끼는 가장 뼈아픈 반응은 “마케팅 비용으로 게임이나 잘 만들지 그랬느냐”는 평가다. 광고는 요란했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게임 구성이나 그래픽 등에서 허술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광고 같은 마케팅에 진력해 초기 이용자 확보에 성공했더라도 게임의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가 과도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조미디어의 ‘2020 모바일 게임 업종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의 디지털 광고비는 최근 3년간 매년 40% 이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모바일 게임의 온라인 광고비는 총 1208억 원 수준이며 그중 12%가 동영상 광고 제작에 쓰였다.중견·중소 게임사로서는 상대적으로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 중견 게임사는 올해 영업손실을 공시하며 “신작 공개를 앞두고 광고 선전비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투자 비용 대비 효과도 고민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반인이 인지할 만큼 자주 광고를 내보내려면 3개월 기준 50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까지 들어간다. 매출을 100%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큰돈을 들여 스타 마케팅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