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펠리페가 말하는 ‘한국 생활’ V리그 4년째… 해마다 팀 옮겨 가장 많이 하는 말 “죽겠다” 이제 한국은 내게 제2의 고향
V리그 4년차 외국인 선수 펠리페는 매 시즌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은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이번 시즌 OK금융그룹에 대체 선수로 합류한 그는 “모두가 친절한 한국에서 다시 뛸 기회를 얻게 돼 너무 좋다”고 말한다. KOVO 제공
펠리페는 V리그 최초로 4시즌 연속 코트를 밟으며 장수 외국인의 역사도 새로 쓰고 있다. 그동안 전체 네 시즌을 뛴 외국인 선수는 있었지만 네 시즌 연속 V리그에 몸담은 건 그가 처음이다. 펠리페는 “뛸 수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력을 좋게 봐주는 것 같다. 내 배구에 신뢰를 보내준 모든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 ‘대체 선수’ 하면 떠오르는 이름
펠리페는 한국전력 소속이던 데뷔 시즌(2017∼2018)을 제외하곤 세 시즌을 ‘대체 선수’(기존 외국인 선수가 부상 등으로 빠졌을 때 빈 자리를 채우는 선수)로 뛰었다. 이번 시즌에도 메디컬테스트에서 무릎 부상이 드러난 마이클 필립을 대신해 OK금융그룹에 합류했다. 누구나 ‘먼저’ 탐낼 만한 기량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아쉬울 때는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선수가 됐다. 특히 V리그 경력이 쌓이면서 국내 무대에 최적화된 선수가 돼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V리그는 다른 리그에 비해 훈련 강도도 높고 경기 일정도 빡빡하다.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펠리페에게 4개 구단에 대한 느낌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나에겐 모두 같은 의미다. 모든 팀, 모든 시즌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펠리페는 한국에 오기 전에도 브라질, 스위스, 이탈리아, 폴란드 등 다양한 리그를 경험한 ‘저니맨’이다. 한국전력(2017∼18시즌), KB손해보험(2018∼19시즌), 우리카드(2019∼20시즌) 시절의 펠리페(왼쪽부터). KOVO 제공
○ 통역 없이도 생활 척척
리그 적응에 필수인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평가다. OK금융그룹의 남균탁 통역은 “식당에서 우리말로 ‘여기 냉면 한 그릇 주세요’를 외치는 걸 보면 브라질 선수가 맞나 싶다. 차도 직접 운전해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닌다. 옆에서 크게 도와줄 일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본인도 “통역 없이 음식 주문할 때 스스로 한국 사람 다 됐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그가 자주 쓰는 한국어 표현은 ‘죽겠다’다. 고된 훈련에 지칠 때마다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결혼하고 아들도 얻으면서 한국은 ‘제2의 고향’처럼 잊을 수 없는 곳이 됐다. 펠리페는 현재 경기 용인시에 구단이 마련해준 숙소에서 아내 나탈리아, 아들 베르나르도와 함께 지낸다. 우리카드 센터 최석기(34)는 “내 아들의 옷과 장난감 등을 펠리페에게 물려준 적이 있다. 외국인에게는 낯선 문화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아들이 입은 사진을 보내주며 기뻐해 나도 고마웠다”고 말했다.
다음 시즌에는 어느 나라, 어느 팀에서 뛸지 모르는 신세. 그래도 한국에서 더 뛰면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는 게 펠리페의 꿈이다. 지난 시즌 우리카드 소속으로 정규리그 1위는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리그가 조기 종료되면서 챔피언결정전은 치르지 못했기에 더 아쉬움이 남는다. OK금융그룹은 12일 현재 남자부 3위에 올라 있다.
‘배구는 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는 펠리페는 “우리 팀이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열심히 뛰어서 팀 우승에 기여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