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충남 공주시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정상에 세워진 ‘노아의 방주’ 앞에 선 설치미술가 이경호 씨(53)는 “코로나 위기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닥치게 될지, 이렇게 길게 위력을 발휘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후위기도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지난 여름 목공 전문가인 장태산, 조상철 작가, 디자이너 엘라와 함께 프로젝트그룹 UStudio를 결성했다. 이들은 산 속에 71일간 방주를 만들기 위해 무더위와 장마와 태풍과 싸웠다. 장맛비로 질척이는 땅 때문에 트럭이 못 올라가 참가자들이 목재를 일일이 손으로 날랐다. 막판에는 태풍 마이삭이 불어닥쳐 지어놓은 방주가 한꺼번에 날아갈 위험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결국 계획보다 한달 이상 늦어진 후 높이 11m, 길이 11m, 폭 16m의 방주가 완성됐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 나무가 썩어 사라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모든 걸 손으로 직접 만들다보니 노아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1987년 프랑스 디종미술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2000년까지 프랑스에서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조형예술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1989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1999년에는 프랑스 살롱드존팽트르 50주년 기념전에서 'Espace Paul Ricard' 상을 받았다. 그는 “젊었을 때는 제 안의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했는데, 결혼 후 아이를 낳게 되면서 자녀가 살게 될 미래를 생각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기후위기에 본격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9년 생태 사상가 토머스 베리(1914~2009) 연구 모임인 ‘지구와 사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 학계, 법조계, 기업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환경을 생각하고 공부하는 모임인데 그는 예술분야에서 기후변화 위기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창원, 울산, 광주 등 각종 비엔날레와 전시회에서 녹아내리는 빙산을 형상화한 설치작품을 발표했고, 밀라노, 서울, 베이징, 파리 등 전세계를 여행하며 하늘에 떠다니는 검은색 석유덩어리인 플라스틱 봉지들을 드론으로 촬영해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미디어아트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느날 꿈에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에 녹아내린 거대한 빙산이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을 봤어요. 현재의 추세라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3.7도 상승할 것이라 합니다. 2℃이상 상승하면 지구가 생태복원력을 잃어버려요. 우선 바다에서 거대한 산소공급원인 산호, 플랑크톤이 모두 멸종됩니다. 지구 인구의 3분1이 몰려 사는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면 수십억명의 난민이 발생해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을 겁니다.”
“학자나 교수들의 1,2시간 강의보다는 예술가의 작품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팬클럽을 가진 BTS와 블랙핑크와 같은 K팝스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회사인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 이우환, 아이웨이웨이와 같은 유명 미술작가들에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1%의 기업인과 예술인들이 먼저 탄소제로 활동을 실천하고, 대중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한다면 우리는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이경호 작가와의 일문일답.
“처음엔 바닷가에 난파된 배를 주워다가 사흘만에 연결시켜서 지으려했다. 그런데 목공전문가인 장태산, 조상철 작가의 도움으로 원래 계획대로 목재로 짓게 됐다. 4명의 프로젝트 참가자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관계자들까지 모두 도와 작업을 완성했다. 비가 와서 트럭이 산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목재들을 참가자들이 손에 들고 개미처럼 일렬로 서서 20m씩 전달하면서 산으로 다 올렸다. 말 그대로 노아가 한 방식처럼 일했다. 비엔날레 측에서 4명의 팀원들에게 약속한 인건비는 총 260만원이었다. 일인당 65만원 씩 나눠가졌다. 작업기간이 71일 걸린 걸로 치면 하루 1만원도 안되는 일당이다. 전문 목수에게는 말도 안되는 돈이었지만,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열정적으로 작업해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린다.”
―2150년에 왜 대홍수가 난다는 설정을 했는가.
―기후위기가 발생할 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난민문제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태평양과 인도양의 군소 섬나라들은 물에 잠긴다. 또한 식수가 염수로 변해 물을 마실 수 없게 된다. 섬나라 주민들은 대부분 육지로 탈출해야 한다. 이어 지구 인구의 3분의 1이 살고 있는 해안가 도시들도 물에 잠겨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다. 시리아 전쟁도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과 러시아의 밀수출 중단이라는 기후위기가 배경이다. 시리아라는 한 국가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탈출하면서 엄청난 문제를 야기했다. 이 와중에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통해 들어오는 난민을 거부했고, 결국 브렉시트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들어왔을 때 난리가 났다. 이에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기후위기 난민이 발생할 때 전쟁과 테러, 폭동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호주에서는 기후위기로 아시아의 35억 인구 중 약 10억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이들이 호주로 몰려올 것에 대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코로나와 기후위기는 무슨 관계가 있나.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열대우림이 파괴되면서, 야생동물이 서식해야 하는 장소에 인간이 침범하고 있다. 그래서 박쥐를 비롯한 수많은 야생동물을 숙주로 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으로 전해질 위기가 커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자체도 어떻게 보면 기후난민인 셈이다. 야생에서 살아야 하는 데 인간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올해 코로나 사태 때문에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관람객들이 더 많이 몰린 것은 아이러니다. 야외에서 하는 전시라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나온 사람도 있었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탓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2030년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파리의 이달고 시장은 2025년 도심 디젤차 운행금지를 선언했고, 시내 외곽에 주차장을 마련하고 대중교통을 늘리고 있다. 지하철에서 괴한을 만났을 때 ‘살려주세요!’하면 사람들이 눈치를 보면서 서로 피한다. 그런데 ‘거기 파란색 옷 입은 분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꼭 찍어서 도움을 청하면 그 사람이 바로 달려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1%의 셀럽들에게 먼저 부탁하고 싶다. BTS의 RM은 전세계 팬클럽 아미(ARMY)에게 전해달라. BTS가 먼저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타면서, 아미팬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해주세요.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인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님! 로봇회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를 축하합니다. 불이익이 있겠지만 앞으로 내연기관차 생산보다는 세계적인 명품 전기차와 수소차 생산에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려 짓는 것을 당장 멈춰주시고,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세계4대 ‘기후 깡패국가’(Climate Villain)로 불리는 현실에서 탈출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