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 [AP=뉴시스]
中 항모 전력 확충
중국은 미군의 전진 배치 항모에 대항하고자 항모 전력 확충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옛 소련의 미완성 항모 ‘바랴크’를 가져와 개조한 중국 최초 항모 ‘랴오닝’부터 이를 기반으로 확대 개량한 자체 건조 항모 ‘산둥’을 실전 배치한 중국은 현재 상하이 앞바다의 창싱다오 조선소에서 길이 300m를 훌쩍 넘는 초대형 항모 003형을 건조하고 있다.
12월 5일 일본 ‘교도통신’과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내년 1월 첫 해외 전개를 앞둔 영국 퀸엘리자베스 항모 타격 전단이 일본에 장기 주둔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일본 정부, 유관 기업들과 협조 계획까지 전부 짜놓았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영국 항모 전단은 유엔군 일원으로 일본에 전개되며, 이에 따라 유엔사 후방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주일 미군으로부터 보급과 작전 지원을 받을 예정인데, 임시 모항은 제7함대 상륙함대 거점이 있는 나가사키현 사세보가 확정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6·25전쟁이 끝난 후 70여 년 만에 영국군이 일본에 주둔하게 된 것이다.
영국 항모 타격 전단은 미 해군 항모 전단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 항모 전단을 압도하는 수준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 해군의 현행 편제로는 만재배수량 9400t급의 45형 방공 구축함, 일명 데어링급(Daring class)이 2척, 만재배수량 4900t급의 23형 대잠 호위함, 일명 듀크급(Duke class)이 2척, 수중배수량 7800t급의 아스튜트급(Astute class) 공격원잠 2척, 우리나라의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해 납품한 3만9000t급 타이드급(Tide class) 고속 군수지원함 2척 등 8척의 함정이 편성된다.
45형 구축함은 영국이 자체 개발한 샘슨 위상배열레이더와 아스터-30 함대공미사일로 무장한 고성능 방공 구축함이다. 120km 거리에서 12개의 표적과 동시 교전할 수 있는데, 위급 상황에서는 능동 위상배열레이더 방식의 아스터-30 레이더의 장점을 이용해 최대 50개의 함대공미사일을 동시에 유도, 25개 표적을 요격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자랑한다.
23형 호위함은 퇴역을 앞둔 구식이지만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대잠 작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준수한 대잠함이고, 아스튜트급 공격원잠은 적 잠수함을 잡기 위한 헌터-킬러 능력에 특화된 잠수함으로 북해에서 러시아 수중함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고성능 잠수함이다.
로널드 레이건호. [뉴시스]
일본은 2013년 중기방위력정비계획에서 기존 46척 호위함 체제를 54척 체제로 증강하기로 결정한 이후 급속도로 수상함 전력을 확대 및 현대화하고 있다. 각 호위함대는 물론, 지방배치대에도 4000t급 이상 호위함이 편성돼 있어 얼마든지 영국 항모에 호위함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일본은 영국 항모 전단에 장기 주둔할 수 있는 기지도 제공할 예정이다. 퀸엘리자베스 항모에는 병력 1300여 명이 승선하며, 호위 전단 전력까지 고려하면 일본에 장기 배치되는 영국군 병력은 2000여 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 정도 병력이 장기간 작전하려면 군수 보급이 용이하고, 주변에 공항이 있으며, 파병 장병들이 휴일에 출타해 생활할 수 있는 도시가 가깝게 자리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곳으로 사세보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사세보는 미 해군 제7함대 예하 상륙함대가 거점을 둔 곳으로, 극동지역 미군 최대 병참 기지가 자리하고 있다. 미군 대형 함정들의 운용을 위해 정비된 곳인 만큼 7만t급 항모가 주둔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영국의 이러한 동북아 항모 전개는 미국과 사전 교감이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현재 영국이 작전에 배치한 F-35B 전투기의 수량은 1개 비행대가 채 되지 않는다. 퀸엘리자베스 항모에는 F-35B 36대가 탑재돼야 하는데, 현재 영국군 보유 수량으로는 이 정원을 채울 수 없다. 이 부족한 전력을 채우는 것이 바로 미군이며, 퀸엘리자베스 항모를 증원해줄 미군 F-35B는 이미 일본에 와 있다.
미군은 2017년 사세보를 거점 삼아 작전하는 강습상륙함에 배속되는 F-35B 전력으로 제121해병전투공격비행대(VMFA-121)를 이와쿠니에 배치한 데 이어, 올해 10월부터는 제242해병전투공격비행대(VMFA-242)를 이와쿠니에 조기 배치했다. 미 해병대 F-35B 비행대는 16대로 편성되는데, 현재 2개 비행대가 편성된 상태이므로 일본에는 32대의 F-35B가 배치돼 있는 셈이다.
미 해군 강습상륙함은 통상 임무에서는 F-35B를 6대, 제해함 임무에서는 20대 탑재한다. 따라서 미국이 주일 미군 F-35B 비행대 개편을 당초 일정보다 1년 가까이 앞당긴 것은 2021년 1월로 예정된 영국 해군 항모 전개를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로 영국은 퀸엘리자베스 항모 취역 직후 항모를 미국 대서양 연안 노포크에 보내 미 해군·해병대와 연합전단 구성 및 작전 수행을 숙달했다. 미 해병대 전투기가 퀸엘리자베스 항모에 배속돼 임무를 수행하는 게 그것인데, 지금도 미 해병대는 제211해병전투공격비행대(VMFA-211)를 영국에 보내 퀸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에 배속시켜 훈련 중이다.
“아편전쟁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아메리카 강습상륙함. [미 해군 제공]
영국 항모의 일본 배치 예정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매체들은 또다시 “영국이 무슨 돈이 있어 항모를 해외에 파견하나” 등의 반응을 보이며 영국을 비웃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비웃는 영국 퀸엘리자베스 항모는 스텔스 전투기로만 함재 전투기 전력을 꾸려 실전 배치되는 세계 최초 항모로, 중국 랴오닝이나 산둥호 항모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작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산둥과 랴오닝 항모의 J-15 전투기는 기종 자체가 옛 소련의 항모용 전투기 시제기 도면을 빼돌려 불법 복제한 것으로, 성능과 신뢰성 등 모든 면에서 불신을 받는 전투기다. 그것을 조종하는 파일럿 역시 극심한 조종사 구인난 속에서 고등학교 졸업생을 뽑아 단기 속성 교육으로 배치한 자원들이다. 반면, 퀸엘리자베스 항모의 전투기들은 더 이상의 설명조차 불필요할 정도로 압도적인 성능을 지닌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B이고, 그것을 조종하는 파일럿들 역시 AV-8B, F/A-18, 토네이도 등 다양한 기종으로 다년간 실전 경험을 쌓은 미국과 영국의 최정예 전투조종사들이다.
내년 1월 미 해군은 제7함대에 고정 배치 전력인 로널드 레이건 항모와 아메리카 강습상륙함 외에도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모, 마킨 아일랜드 강습상륙함을 추가로 전개할 예정이다. 같은 시기 영국 퀸엘리자베스 항모까지 합류하면 제7함대의 항모 전력은 5척 규모로 늘어나게 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2개국과 일본, 호주까지 합류한 압도적 군사력이 진용을 갖추는 1월, 과연 중국은 지금처럼 기세등등할 수 있을까.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69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