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오늘은 전장화 그리고 전동화된 차량의 안전성 문제를 한번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는 테슬라 ‘모델 X’ 차량의 주차장 충돌 사고로 탑승객 1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요.
사고 이후 차량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의 진화가 어려웠다는 점 그리고 외부에서 차량의 문을 열 수 없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고였습니다.
테슬라 ‘모델 X’. 테슬라코리아 제공
충돌 사고 이후의 화재는 전기차라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긴박한 사고 상황에서 전원이 끊기면 밖에서 문을 열 수 없었다는 점은 전기차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아니라고 봐야할 듯 합니다.
전동화와는 별개로 차량 전반에서 전기·전자적인 장비를 활용하는 비중이 커지는 ‘전장화’라는 흐름 속에서 문제를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살펴본 지난주 휴일차담에 보내주신 관심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현대차 주가 7.7% 올린 ‘전기차 전용 플랫폼’… 기대와 우려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01205/1043007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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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서 문 못 여는 차… 전기차의 문제 아니고 테슬라의 문제
최근 용산구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는 아직 자세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사고 자체에 대해서는 섣불리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고 상황이 아니라 자동차에 집중했을 때 이번에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사고 상황에서 외부에서 차량의 문을 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 불이 잘 꺼졌느냐 하는 문제는 그 다음 이슈로 보입니다. 내연기관차 화재에서도 불을 끄는 것보다 탑승객을 구조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
문을 열지 못한 원인이 “전기차여서 그랬던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닌 것으로 봐야 합니다.
테슬라가 해당 차량의 도어 그리고 도어 오픈에 적용한 ‘기술적인 선택’이 문제의 핵심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찾아본 모델 X의 비상 대응 안내(Emergency Response Guide)에 따르면 모델 X의 도어는 기본적으로 12V 배터리의 힘을 활용합니다.
12V 배터리는 전기차의 모터를 구동하는 동력원이 되는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테슬라의 경우 400V)과는 별개로 쓰이는 배터리인데요.
기존의 내연기관차에서 납축전지 형태로 쓰이는 그 배터리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에어컨이나 에어백 같은 장치를 작동시키는데 쓰이는 이 12V 배터리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할 때는 도어 핸들을 누르는 동작으로 모델 X의 도어를 열 수 있다는 것이 테슬라의 설명입니다.
테슬라 ‘모델 X’의 문을 여는 방법을 설명하는 비상 대응 안내. ‘모델 X’ 비상 대응 안내(Emergency Response Guide) 캡쳐
문제는 이 배터리가 작동하지 않을 때입니다.
이 매뉴얼에는 앞문의 경우 차량 안에서 핸들을 당기는 방식으로 문을 여는 방법 밖에 설명돼 있지 않습니다.
12V 배터리의 전력 공급이 끊겼을 때 밖에서 어떻게 열 수 있는지는 설명이 없는 것입니다.
창문이 열려 있다면 혹은 창문을 깨뜨린다면, 밖에서 손을 넣어서 차량 내부의 핸들을 당길 수 있어 보이긴 하지만 이것을 밖에서 열 수 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 차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직관적으로 와 닿지도 않습니다.
이번 사고 이후 여러 기사에서 나온 것처럼, 결국 12V 전력 공급이 끊어지면 밖에서는 사실상 문을 열 수 없다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 ‘비상 대응 안내’는 또 날개처럼 열리는 이른바 ‘팔콘 윙’ 형태의 뒷문에 대해서는 12V 배터리가 없으면 외부에서 열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테슬라가 모델 X 등에서 전기적 신호를 통해서 문을 개폐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 이후 화재 등으로 전원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외부에서 문을 열 수 없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 차, 어디까지 전장화할 것인가
고도화된 기계공학의 산물이었던 자동차는 전자 장치를 빼놓을 수 없는 복잡한 제품이 된지 오래입니다.
기계적인 구조와 유압 체계가 여전히 큰 역할을 하지만 곳곳에서 전기적인 장치가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합니다.
에어컨과 열선·통풍·마사지 시트 같은 운전자 편의장치에 전기가 쓰이는 것은 기본입니다.
센서와 카메라를 기반으로 알아서 가·감속해서 앞 차와의 간격을 조절하며 항속 주행하고 그러면서 차선까지 지킬 수 있게 스티어링 휠의 움직임에 차량이 스스로 직접 개입하는 것도 결국은 전기 장치의 힘입니다.
테슬라 ‘모델 X’의 12V 배터리 관련 안내. ‘모델 X’ 비상 대응 안내(Emergency Response Guide) 캡쳐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반 중국에서 ‘와이어링 하네스’라는 전선 뭉치가 납품되지 않으면서 국내 완성차 공장들은 생산 라인을 ‘올 스톱’ 시켜야 했습니다.
차량의 모델과 옵션마다 제각각인 저 와이어링 하네스를 먼저 깔지 않고는 조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고는 어디까지 전기 장치를 활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전기가 끊어졌을 때를 대비한 백업 장치는 어느 수준까지는 반드시 마련해 놓아야 하는지를 완성차 메이커들이 잘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력이 끊어진 비상 상황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해놓지 않아서 외부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차는 다른 장점이 있더라도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기존의 완성차 업체들이 그동안 테슬라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안전’이라는 문제 때문에 우려를 표명해 왔던 부분도 한번쯤 짚어볼 만 합니다.
그리고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 외부에 있는 도어 핸들은 케이블을 이용해 기계적으로 잠금장치와 연결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12V 배터리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언제든 문을 열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제조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 전동화·전장화 시대, 더 안전한 차를 위해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각기 다양한 가치를 추구합니다.
대중성, 가성비, 넓은 공간, 운전의 즐거움, 고급스러움 등등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이라는 문제는 모두가 양보해서는 안 되는 이슈 아닐까 싶습니다.
전장화된 차는 안전성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큰 장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최근 어느 한 자동차 브랜드의 영상 광고를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함을 느끼는데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이어지는 육아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한 가정을 보여주는 광고입니다.
이 광고는 일상에 지친 한 어머니가 깜빡 졸음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대형 화물차와 충돌할 뻔한 상황을 자동차가 스스로 감지하고 스티어링 휠을 돌려서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볼 때마다 저는 늘, ‘안전하게 운전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속과 감속에, 그리고 조향에 차량이 직접 개입할 수도 있게 해주는 ‘전장화’는 저런 방식으로 위험을 미리 감지해서 사고를 예방하는 이른바 ‘능동적 안전’이라는 영역을 만들어 주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술을 얼마나 잘 검증해서 적절하게 활용하는지에 따라서 차는 훨씬 더 안전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 브랜드를 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라고 봐야할 테슬라의 ‘오토 파일럿’은 다른 브랜드의 ADAS가 그러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운전자를 잘 도와주면서 보다 안전하고 사고 없는 운전을 돕고 있을 수 있습니다.
테슬라의 모델 X는 충돌성 안전성 테스트에서 실제로 아주 좋은 점수를 받은 차이기도 합니다.
테슬라 ‘모델 X’에 대한 소개. 테슬라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도로 위에서는 때때로, 누구도 원치 않는 사고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는 점을 감안한 설계가 그 바탕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점만큼은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떠한 시도를 해도 좋지만 다양한 사고 상황을 고려했을 때 꼭 지켜야 할 원칙들은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고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발생할지 알 수 없고 그 결과 차량과 탑승객은 어떠한 상황에도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당연히, 이런 점은 전 세계의 모든 자동차 제조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챙기느라 차량의 디자인이 조금 덜 예뻐질 수도 있을 것이고 추가적인 장치를 적용하느라 원가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무엇이 더 우선시돼야 하는 지는 자명해 보입니다.
국내·외의 규제 당국 역시 이런 기초적인 안전 문제를 간과한 차가 판매되는 문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보입니다.
연비나 배기가스 같은 부분도 물론 잘 감시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안전 문제를 놓치고 있었던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전기차의 충돌 시 화재 위험까지… 차 업계 모두가 풀어야할 문제 ‘미래차 안전’
전기차의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이 충돌 시 차량 화재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문제도 당연히,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입니다.
이 점은 테슬라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기차가 풀어가야 할 과제인데요.
전기차에 많이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의 경우 화학적인 형태로 저장되는 막대한 에너지가 큰 외부 충격이 있었을 때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테슬라를 포함한 많은 완성차 업체들은 사고 시에도 이 배터리 시스템이 최대한 보호될 수 있는 구조 설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테슬라 ‘모델 X’의 고전압 배터리 시스템. ‘모델 X’ 비상 대응 안내(Emergency Response Guide) 캡쳐
탑승객 공간인 ‘캐빈룸’ 보호에 집중하면 됐던 기존의 자동차 설계와는 다른 또 다른 도전을 마주한 셈인데요.
배터리의 부피가 워낙 크다는 점 그리고 대체로 배터리의 위치가 캐빈룸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기존의 내연기관차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연기관차는 엔진이 위치한 차량 전면부나 연료 탱크가 있는 후면부에 불이 나도 캐빈룸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반면 전기차는 탑승객 공간 바로 아래의 배터리에서 발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배터리에서 불이 나게 되면 중금속이 포함된 유독 가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중대한 위험 요소입니다.
앞으로 도로에서 전기차가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전기차 사고도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터리가 발화하는 수준의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배터리 발화를 진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과거 내연기관차에 비해 재산상의 손실이 더 커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안전이 우선 아닐까 싶습니다.
평소에도 그리고 충돌 시에도 보다 더 안전한 전기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 완성차 제조사들에게는 가장 기본이면서 또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점점 더 낯설어지고 있는 미래자동차’가 여러 측면에서 과거보다 더 안전한 차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