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거진천, 사후용인 마다하고 수원에 장지 조성 풍수사상이 맺어준 수원과 삼성의 오랜 인연 삼성디지털시티 자리한 영통, ‘영(靈)’과 ‘통(通)’하는 명당
삼성디지털시티의 젖줄 역할을 하는 원천천. 안영배 논설위원.
애초 이 회장은 부모(이병철·박두을) 묘소가 있는 용인 에버랜드에 묻힐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풍수학계에서는 몇몇 지관들이 이건희 회장의 음택(陰宅·묘) 후보지를 고르기 위해 용인을 훑고 다녔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깨고 수원으로 장지가 정해졌다. 이 과정에 이 회장의 배우자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살아서는 진천 땅(生居鎭川), 죽어서는 용인 땅(死居龍仁)’이라는 속설까지 있는 용인 대신 수원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 삼성 창업주 이병철, 풍수로 수원과 인연 맺다
삼성가가 수원을 중시하는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67년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경남 의령에 있던 모친의 묘소를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위치한 산으로 옮겼다. 바로 직전 해인 1966년, 그는 큰 고초를 겪는다. 그가 경영하던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일본에서 사카린을 밀수입한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회사를 국가에 헌납한 일이다. 풍수에 관심이 많았던 이병철 회장은 당시 처한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풍수가의 조언을 따라 묘를 이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병철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묘를 이장한 이듬해인 1968년, 조상이 지켜보는 수원에서 새로운 삼성을 준비했다. 수원 영통구 일대에 약 149만㎡(45만 평) 규모의 터를 확보한 것이다. 이후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을 창립했다. 1938년 대구에서 농수산물을 취급하던 삼성상회로 출발한 회사를 30년 만에 기술 집약 산업인 전자업체로 바꾸는 한국 기업사에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였다. 라디오와 TV생산 라인을 갖추고 불과 36명의 인력으로 시작한 삼성전자는 이후 고속 성장을 거듭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났다.
현재 삼성전자가 위치한 곳은 총 면적 172만㎡(약 52만평) 규모의 ‘삼성디지털시티’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큼 크게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이후 반도체 생산라인을 경기 기흥, 화성, 평택 등으로 이전시켰다. 현재 삼성디지털시티에는 기술 혁신과 창조를 위한 정보통신연구소(R3)와 디지털연구소(R4), 모바일연구소(R5) 등 핵심 연구소들이 남아 있다.
● 좌청룡 삼성디지털시티, 우백호 삼성 선영
영통구의 신령스런 나무로 통하는 느티나무. 안영배 논설위원.
● 영(靈)이 통(通)하는 터에 나타난 기적
삼성디지털시티 출입구. 안영배 논설위원.
삼성디지털시티는 38층 규모의 오피스 타워를 중심으로 연구실, 사무실, 복지시설, 게스트하우스 등 130여 개 건물에서 50여 개 국적을 가진 3만5000명의 임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2018년 기준). ‘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임직원들을 위한 건강, 육아, 교육, 문화, 예술 관련 각종 시설물들이 갖춰져 있다. 일반인들이 이곳을 방문하려면 사전 예약과 승인을 거쳐야 한다.
삼성디지털시티에서 가장 핵심적인 혈처(穴處)는 공원인 센트럴파크(3만7699㎡)를 곁에 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삼성전자 본사다. 삼성전자는 서울 강남 서초동에 마천루 같은 사옥을 마련해 놓고서도 본사 주소를 한 번도 수원에서 옮기지 않았다.
흔히 반도체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폰은 글로벌 도술문명(道術文明)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에 비유된다. 스마트폰으로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 알 수 있고, 동영상과 통화 등을 통해 세계인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다. 즉 누구나 천리안(千里眼)을 가진 도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 수원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통하게 해주는’ 스마트폰을 만들어낸 삼성디지털시티가 영통구(靈通區)에 자리 잡게 된 것을 범상치 않게 여긴다. 영통지역은 이름 그대로 ‘신령한 영(靈)이 통(通)하는’ 곳이다. 지명의 유래도 특이하다. 삼성디지털시티의 뒷배가 되는 청명산(191m) 봉우리의 우물 속에 영과 통하는 신비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거나, 신비스런 도인(혹은 산신)이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다 보였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런 이유로 영통동 주민들은 매년 단오날이면 청명산 산신제와 신령스러운 느티나무(영통동 1047-3) 아래서 당산제를 지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풍수적으로 해석해도 청명산 아래 삼성디지털시티는 풍성한 재물을 뜻하는 토(土)의 기운과 영통, 교감, 창의 등을 뜻하는 화(火)의 기운이 적절히 배합된 터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혁신과 창조의 산실을 추구한다’는 삼성디지털시티의 목표와 어울린다. 삼성이 디자인 혁명을 강조하며 건립한 서울 우면동의 ‘서울R&D캠퍼스’도 수원으로 내려올 경우 더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우면동 연구소는 터와 기운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신화를 주도했던 이건희 회장도 이런 이유로 수원을 지키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안영배 논설위원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