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용산 미군기지 반환[횡설수설/박중현]

입력 | 2020-12-14 03:00:00


1882년 모래 섞인 쌀을 급료로 받은 구식군대 군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기화로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하자 고종의 척족인 민씨 일파는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나라 정부는 오장경(吳長慶)을 지휘관으로 한 병력 4만5000명을 파견해 난을 진압했다. 사신, 상인을 제외하고 중국인이 근대 이후 한반도에 대규모로 진입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인천을 통해 조선 땅에 들어온 청군은 용산, 동대문 등지에 머물렀고 난이 진압된 뒤에도 3000여 명이 용산에 눌러앉았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잇따라 승리한 일본군은 청나라 군대가 차지했던 땅에 주둔군 사령부를 지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자 미군이 이 땅을 접수해 보병 제7사단을 주둔시켰고 한국전이 끝난 1953년 용산에 주한미군사령부를 창설했다. 군사독재 시절엔 ‘한국 안의 미국’인 용산 기지에 드나드는 것이 특권층임을 확인해주는 징표가 되기도 했다.

▷지난주 정부는 미국 측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 용산기지 내 땅 2곳을 포함해 전국 12개 기지 터를 미국 측에서 돌려받기로 했다. 외국 군대가 138년간 상주해온 용산 땅이 국민 품으로 돌아오는 첫발을 뗀 것이다. 이번에 돌려받는 용산기지 터는 남쪽 스포츠필드 터와 동남쪽 소프트볼 경기장으로 용산기지 전체면적 202만1000m² 중 2.6%인 5만3000m²다. 미군이 평택기지로 완전히 옮길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먼저 비는 땅부터 순차적으로 돌려받기로 한 것이다.

▷올해 들어 서울 집값이 급등하자 국토교통부는 8·4 부동산 대책을 통해 미군에게서 돌려받는 용산기지 캠프킴 터에 공공주택 3100채를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역사적 상징성이 큰 땅을 단기 부동산 대책용으로 소모하지 말고 더 나은 개발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당초 정부는 2016∼2017년 용산기지 이전을 완료하고 2019∼2027년 공사를 진행해 뉴욕 센트럴파크에 비견될 도심공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지만 기지 이전과 협상이 지연되면서 이 계획의 시간표도 늦춰지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의 ‘뜨거운 감자’인 환경오염 정화비용 문제는 우리 정부가 먼저 비용을 부담한 뒤 나중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미군 측이 원상복구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지금까지 미군기지 반환 후 정화비용은 한국 측이 고스란히 부담했다. 용산은 100년 이상 군대가 주둔한 땅이다 보니 유류, 중금속 오염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토지 정화에만 2∼3년이 걸리고 비용도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흐지부지 넘어가선 안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