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토끼는 포식자를 만났을 때 그들보다 더 잘하는 게 있어야 살 수 있다. 포식자들은 대체로 덩치도 크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까지 있는데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있다. 장점의 뒷면은 단점이라 무게 때문에 가파른 비탈길에 약하다. 토끼는 포식자의 이 단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만들었다. 뒷다리를 키워 오르막길을 가뿐하게 올라 순식간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살아있다. 우리가 즐기는 커피는 커피콩에서 추출한 것인데 커피콩은 말 그대로 콩알만 하다. 그런데 같은 열대식물인데도 카카오는 어른이 두 손으로 잡아도 넘쳐날 만큼 큰 열매를 만든다. 왜 그럴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다를까?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남미 선수들이 뛰어난 개인기를 가졌다는 걸 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라도나가 대표적인데 왜 남미 선수들만 그런 능력을 가졌을까? 그들만 가진 색다른 유전자라도 있는 걸까?
사실 이 화려한 능력에는 아픈 과거가 서려 있다. 알다시피 남미는 유럽의 오랜 식민지 지배로 고생을 했다. ‘공은 둥글어서 평등하다’고 하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이들 ‘노예의 후손들’은 백인들과 동등하게 뛸 수 없었다. 몸을 부딪치기라도 하면 거의 무조건이다시피 이들에게 반칙이 선언되는 게 관례였다. 그렇다고 질 수는 없는 일. 어떻게든 몸싸움을 피하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드리블이 그것이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덕분에 축구 강국이 되었고 많은 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유가 없는 건 없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부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왜 이러는가 궁금하면 과거를 보라. 앞으로 잘될 수 있을까 궁금하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보라.”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제를 되짚어 보고 오늘을 둘러보며 내일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