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 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은 “(6·29선언이 있던) 1987년 이후 우리 민주주의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믿었는데 조국 사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등을 거치며 건강성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나는 다시 1987년 6월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목이 터져라 외쳤던 그 이름을 30여 년이 지나 다시 외칠 줄 누가 알았을까. 다른 의견을 말하면 처벌하고(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 처벌법), 북한 인권을 위해 전단을 날리면 잡아가는(대북전단금지법) 세상. 자신들은 우상화(민주유공자 예우법)하고, 미운 놈은 출마도 막으려는(윤석열 출마금지법) 정권. 민경우 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55)은 9일 “민주화 운동 출신 정권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현 정권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주류인데 왜 비민주적인 모습이 많은 건가.
―지금 정권이 어떤 점에서 닮았다는 건가.
“상대(윤석열 검찰총장)를 잡더라도 민주적 절차는 지켜야 하는데 지금 보는 대로 그런 게 없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은 형식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를 구분한다. 1980, 90년대 운동권에서 썼던 표현이다. 민주주의를 두 단계로 구분하면, 내용적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어떤 행동도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정당화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과거 운동권적 행태에 기반을 둔 권력욕으로 사회를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
※ 윤 총장 찍어내기의 경우 수사권 없는 법무부가 수색을 지휘했고, 감찰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결과를 발표하고 징계를 청구했다. 감찰 시 의무규정이던 법무부 감찰위원회 자문은 임의규정으로 바꿨다. 이런 부당함에 대한 비판은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으로 몰고 있다.
―룰이 도움이 안 되면 바꾸거나 없애고, 없으면 만들고 있기는 하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정권이 이렇게 과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2005년 8·15특사로 출소한 민경우 전 사무처장.
※ 문 대통령은 2017년 3월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후 경쟁 후보에 대한 ‘문파’들의 비방 댓글과 문자폭탄을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고 했다.
―현 정권 실세라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은 학생운동을 세게 한 편인가.
“평가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이 총학생회장을 한 1987∼89년은 이미 군사정권의 기가 꺾인 때였다. 92년 전국연합 할 때 그 친구들을 봤는데 당시는 김일성이 분단 50주년이 되는 1995년을 통일 원년으로 삼자고 해 운동권 모두가 총궐기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핵심을 차지하는 운동권 출신들은 적당한 지위까지만 하고 다들 이 그룹에서 빠져나갔다.”
※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은 민족민주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1990년대 한국 최대의 재야운동단체다.
―주사파 논란까지 있는데 빠져나갔다고?
“1980, 90년대 학생운동은 거의 다 민족해방(NL)이라고 보면 되고, NL은 혁명이 목표였다. 당시 학생 운동 상층부는 김일성을 수령으로 하고 북한에 흡수 통일되길 바란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나도 그랬고.” (군사독재 정권의 조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주사파였으니까. 그런데 좀 온도 차이는 있다. 옛날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처럼 실제로 그런 사상을 신념화한 집단도 있지만 우리 정도는 대학생들의 겉멋으로 보면 된다.” (구별이 되나?) “쉽게 말해 법정 최후진술 때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보면 된다. 그 말에 따라 형량이 크게 차이가 나니까. 비전향 장기수들이 그런 사람들이지. 우리 정도는 그렇게 말 못 한다. 그리고 지금 일본과의 마찰도 NL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일본과의 마찰에 NL의 사상적 배경이 있다는 건가.
“혹시 김일성의 ‘갓 끈 전술’을 들어본 적이 있나? 갓은 한쪽 끈만 끊어져도 떨어져 날아간다. NL은 일본을 미국과 한국을 엮는 고리로 보는데 일본을 끊으면 미국도 끊을 수 있다는 전술이다. 내가 2000년 통일운동을 할 때 실제로 그런 논리를 염두에 많이 뒀다. 일본 공격이 반일이 목표가 아니라 반미를 위한 우회 전략인 셈이다. 우리 국민의 반일 정서가 뿌리 깊다 보니 이용하기도 좋고. NL은 이런 걸 이용하는 데 아주 능하다. 그런데 지금 양국 간에 마찰을 빚는 사안 한두 건을 해결한다고 풀릴까?”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정 문제가 터졌을 때 집권세력에서 ‘친일 세력의 최후 공세’라고 했는데 연관이 있나.) “위안부 문제는 여성들의 인권 문제와 민족의 수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런데 NL은 철저하게 후자다. 그들이 피해 할머니들의 돌봄이 아니라 반일 감정을 증폭시키는 사회운동에 비중을 두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 그 운동의 상징인 윤미향을 공격하는 것은 뒤에 뭔가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좀 흐지부지된 것 같은데 검찰이 윤미향 사태를 더 파고들면 난리가 날 거다. 자금 흐름이 아주 불투명하니까….”
민경우는…
학생운동이 하고 싶어 서울대 의대를 자퇴하고 1984년 국사학과에 입학.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과 10년간 이적단체인 범민련 사무처장을 지냈다. 민족해방(NL)의 핵심 이론가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총 4년여간 복역했고,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운동을 했다. 2012년부터는 운동을 접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