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생사’가 불분명한 청와대 2인자
후임 여부 빨리 정해 국정 혼란 줄여라

이승헌 정치부장
지금까지 노 실장 후임으로 거론된 사람은 우윤근 전 주러대사, 최재성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이다. 우 전 대사는 부인의 반대가 심해 비서실장을 고사했다고 하는데 정작 대통령특사는 수락해 19일까지 러시아에 머물 예정이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문 대통령 친서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달한다고 하니 “비서실장 맡기 전 연막을 피우는 것 아니냐”며 헷갈려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최 수석은 본인이 비서실장직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데, 정작 문 대통령 주변에선 “정무수석 후임도 마땅치 않은데…”라는, 다소 온도차가 있는 말이 들린다. 유력한 ‘마지막 비서실장’ 후보였던 양 전 원장은 여전히 손사래를 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같은 ‘부산파’의 맏형 격이자 지금은 여행업을 하고 있다는 이호철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설득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문제는 이런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장기화되면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힘이 실리지 않고 국정 혼란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유임이 불분명하고 곧 교체될 것이라고 수개월째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에게 어떤 공직자나 청와대 직원들이 제대로 보고할까. 노 실장의 직무 역량과 무관하게 대통령비서실장직 자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각종 고위급 공무원 인사를 총괄하는 인사추천위원회의 위원장이 바로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추미애-윤석열’ 갈등 처리와 내년 2차 개각 등 조율할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최근 한국갤럽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진공 상태에 가까운 대통령비서실장의 흐릿한 존재감이라고 본다. 최근 노 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무게감 있는 고언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정치권 인사는 거의 없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과 안일한 상황 인식이 문제라며 이를 바꾸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관성적 주장에 불과하다. 그리 바꾸라고 해도 꿈쩍도 않던 사람이 왜 스스로 임기 말에 유턴하겠나. 차라리 이보다는 대통령에게 뼈아픈 조언도 하고, ‘코로나 축구 모임’으로 논란을 일으킨 최재성 수석이나 억지성 브리핑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강민석 대변인류의 참모들을 다잡을 수 있는 비서실장을 임명하도록 촉구하는 게 그나마 약간의 변화라도 기대할 수 있다. ‘막장 국정’ 지켜보느라 피로감이 극에 달한 국민을 위해서라도 대통령비서실장이란 자리를 이리 방치하면 안 된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