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고당 3인방’도 ‘추-윤’ 사태에 책임 있다[여의도 25시/한상준]

입력 | 2020-12-15 03:00:00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월 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관례에 따라 검찰총장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열린 이날 취임식에서 추 장관은 ‘개혁’을 17번, ‘검찰’을 15번 언급하며 검찰에 대한 대대적인 압박을 예고했다. 동아일보DB

한상준 정치부 기자

최근 사석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뜸 “윤석열 검찰총장의 취임사를 읽어봤느냐”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윤 총장을 잘못 임명한 것 같다. 취임사를 보니 왜 윤 총장이 그런 수사를 했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의 정치적 선택과 정치활동의 자유가 권력과 자본의 개입에 의해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수사와 이른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런 윤 총장과 격렬히 대립하고 있는 추미애 장관의 행보도 취임사에서 이미 예고됐다. 1월 취임한 추 장관은 “우리 법무부는 검찰개혁의 소관 부처로서 역사적인 개혁 완수를 위해 각별한 자세와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이라며 “법무부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 ‘검찰의 제자리 찾기’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추 장관이 윤 총장에게 “명을 거역했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일전(一戰)을 피하지 않은 이유다. 취임사만 놓고 봐도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형 충돌은 예고된 상황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두 사람 사이 충돌의 파열음은 너무나 컸다. 지난달 24일 윤 총장의 직무 배제를 발표한 추 장관의 ‘기습 브리핑’ 직후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누군가 수습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이 ‘추-윤 사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기회와 자격을 갖춘 여권 인사로는 세 사람이 꼽힌다. 정세균 국무총리,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그리고 민주당 이낙연 대표다. 여권에서 이른바 ‘고당’으로 불리는, 고위 당정청 회의 멤버다.

집권 여당의 선장인 이 대표는 지난달, 이번 달 두 차례에 걸쳐 문 대통령과 독대했다. 알려진 것만 그렇다. 지난달 회동에 대해서는 이 대표 스스로도 “대통령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거기에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다들 ‘상상하는 문제’에 추 장관 거취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대표는 두 차례 독대에서 추 장관 관련 대화는 없었다고 했다.

노 실장도 마찬가지다. ‘추-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몇몇 여당 의원들은 문 대통령과 가장 지근거리에서 일하는 노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민주당 관계자는 “전화를 건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듣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세 사람 중 문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꺼내든 건 정 총리가 유일했다. 매주 월요일 점심에 문 대통령과 주례회동을 갖는 정 총리는 지난달 30일 회동에서야 비로소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문제를 언급했다. 사태가 정점으로 치닫고 난 이후다.

그리고 일주일 뒤,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매우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추-윤 사태’와 관련한 첫 공개 언급이다. 이미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이 40%가 무너지고 39%(한국갤럽)까지 내려간 상황이었다. 이를 두고 수도권의 한 여당 의원은 “누군가 진즉 이 문제를 문 대통령에게 직언했다면 유감 표명도 더 앞당겨졌을 수 있고, 지지율도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가까운 고위 공직자라면 그 이후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 몫을 피할 거라면 국무총리, 비서실장, 여당 대표가 매주 일요일 저녁 총리공관에 모여야 할 필요도 없다. 세 사람 모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추-윤 사태’의 책임을 분명히 지고 있는 이유다.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