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해도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요즘 손으로 대충 쓴 듯한 글씨가 유행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몇년 전부터 인기를 끌어 늦은 감이 있지만 완성도보다는 분위기로 승부하는 손글씨는 꾸민 듯 안 꾸민 매력이 있다. 그걸 쉽게 구현하려면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이 있어야 해서 큰맘 먹고 장만했다. 진화된 기술은 실로 대단했다. ‘그림은 절대 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가 ‘나도 어쩌면…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어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꿈을 꾸게 만들었으니까.
요즘 카카오 이모티콘을 보면 정말 성의 없이 그린 그림이 많다. 발로 그린 것 같은 그림에 사람 열받게 하는 문구,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또 산다. 웃기니까. 아무 의미도 없고 생각도 없는 게 딱 내 인생 같다는 위안을 주기도 한다. 내 인성도 만만찮은데 한번 도전해볼까 싶어 알아봤더니 32개의 그림을 그려서 제출하면 된단다. 생각보다 할 만하다 싶다가도 이러한 딴짓도 잠깐이다. 먹고살기 바쁘니까.
창작자들의 자기계발서로 불리는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의 저자 오스틴 클레온은 ‘당신의 능력이 빛을 보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10가지 방법’ 중 하나로 ‘아마추어가 되는 것’을 제안했다. 아마추어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뭐든 시도하고 그 결과도 기꺼이 공유한다. 실수하거나 모자란 실력이 들통 나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섹스 피스톨스의 공연을 처음 본 유명 밴드 리더는 이런 말을 했다. “엉망이었어요. 저도 앞으로 튀어나가 그들과 함께 엉망이 되어버리고 싶었어요.” 창작이 일이 되면 지옥이지만 취미가 되면 참 즐거운 것 같다. 너무 잘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