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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그림, 꼭 예뻐야 하나요?[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20-12-15 03:00:00

<118> 어른 눈으로 본 아이 그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한 엄마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진료를 받은 지 좀 되는 초등학생 1학년 아이인데, 꽤 좋아졌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엄마는 “원장님, 좋아진 게 아닌가 봐요”라고 했다. 학교에서 가을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단다. 아이는 무덤을 그리고, 무덤 위에 나무를 그리고, 그 무덤 앞에 ‘엄마’라고 적었다. 무덤 옆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너 왜 이런 그림을 그렸니?” 하며 혼을 냈다. 선생님이 혼을 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리라는 그림 주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웃고 있냐는 것이었다. 그 반 아이들 모두 집에 가서 그 아이 그림 이야기를 했고, 아이는 이상한 애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런데 어머니, 그림을 왜 꼭 예쁘게 그려야 하는데요?”라고 물었다. 엄마는 울다가 “네?”라며 놀랐다. “왜 가을이면 예쁜 색의 단풍이 있고, 낙엽이 있어야 해요? 사과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야 할까요? 왜 꼭 그렇게 그려야 할까요?”

아이에게 왜 그렇게 그렸는지 물어봤다. 아이는 가을 하니까 성묘를 갔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른단다. 성묘를 가면 그곳에 멋진 나무가 있단다. 그래서 무덤을 그리고, 무덤 위에 그 멋진 나무를 그려봤단다. 무덤 옆에서 즐겁게 성묘하는 자기 모습을 그렸는데,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단다. 그래서 무덤 앞에 ‘엄마’라고 써본 거란다. 그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다. 결국 아이는 선생님이 말한 주제에 잘 맞는 그림을 그렸던 거다. 아이에게 그림에 대해서 묻고, 반 아이들에게도 “얘들아, ○○이는 가을이면 성묘 가는데, 그게 참 좋다는구나”라고 말해주면 되는 거였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이들의 그림이 예뻐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림이 예쁘지 않아도 특징을 잘 살려서 그리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시각적 구성능력이 뛰어나고 머리가 좋은 것이다. 우리는 아이의 그림이 좀 정돈되고 어른이 보기에 납득이 되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림에서 지능과 연관 짓는 것은 선과 획의 질이다. 그림은 예쁘지 않아도 되지만, 선을 긋는 힘을 조절하는 것이나 그어진 획의 질이 너무 많이 떨어지면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의 비례나 면의 사용이 어떤지도 지능을 짐작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아이가 신체를 그렸을 때, 부분 부분이 예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정교해지고 비율이 맞게 변해가면 된다. 아이가 그리는 사람은 정교해질수록 손이 생기고 목이 생긴다. 어떤 아이는 사람을 공주님처럼 예쁘게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떤 아이는 사람을 그렸다 하면 동글동글 눈사람처럼 그린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 아이 모두 조금씩 정교해지고 대충 비례가 맞으면 괜찮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림을 잘 그리고, 집중해서 꼼꼼히 색칠하면 머리가 좋거나 공부를 잘할 거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활동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다. 색칠을 대충 하는 아이들은 공부도 대충대충 할 수 있다. 보통 주의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진득하게 앉아서 색칠을 꼼꼼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정말 열심히 하는데도 삐뚤빼뚤하고 자꾸 색칠한 것이 선을 넘어 빠져나간다면 소근육 발달을 돕는 활동을 고려해봐야 한다.

하지만 부모가 보기에 아이가 대충대충 그리고 색칠한다고 해서 신경 써서 제대로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너무 비장하면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실 그림 그리기는 아이에게 편안한 활동이어야 한다. 재미있어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 부모가 “성의 있게 제대로 해. 또 삐져나갔잖아” 하면서 비장해지면 아이에게는 그림 그리는 것조차 부담이 된다.

어린아이들은 그림을 성실하게 잘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그저 ‘아, 우리 애는 오랫동안 앉아 있지 못하는구나’ 내지는 ‘우리 아이는 성격이 좀 급하구나’ 등을 파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로 그런 점을 나아지게 하려고 다그치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그런 점을 어떤 방법으로 도와줄지 고민해 보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