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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 재료 웃돈 줘도 못 구해” 박스대란 비상

입력 | 2020-12-16 03:00:00

10월 원지업체 화재 파장 장기화
폐지 수입도 신고제 이후 급감
택배 수요 늘며 곳곳서 공급 부족
중소 박스업체들 “문 닫을판” 호소




경북에 있는 골판지 박스 제조업체 A사는 이달 초 거래처로부터 납품 지연에 따른 손실액을 배상해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설을 앞둔 연말은 명절선물용 박스 등 주문이 몰려 연중 가장 바쁜 시기지만, 신규 주문은 아예 받지 못하고 있다.

공장 가동률은 30% 수준까지로 떨어져 직원들은 번갈아 휴가를 쓰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웃돈을 주고도 박스 재료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거래처가 다 날아갈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가장 널리 쓰이는 포장재인 골판지 박스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10월 골판지 재료인 원지 생산업체 대양제지의 화재로 원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다. 화재 이후 원지 가격이 치솟으며 박스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박스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식음료, 농산물 포장은 물론이고 최근 급증하는 택배 포장에도 필수적이라 이번 박스 대란이 제품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골판지 박스는 원지, 원단, 박스 3단계로 나뉜 공정을 거쳐 생산된다. 올해 7월 해외 폐지 불법 수입 등을 막기 위한 ‘폐지 수입 신고제’가 시행되며 폐지 수입량이 전년보다 10%가량 줄었다. 이후 10월 12일 국내 골판지 원지 생산 5대 업체로 꼽히는 대양제지 안산공장이 전소되면서 공급난이 본격화됐다.

골판지 원지는 5대 업체가 과점하고 있는 데다 막대한 설비가 필요해 다른 업체가 곧바로 생산을 늘릴 수 없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원지 가격은 화재 이후 20∼25% 급등했다. 김진무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전무는 “공급 차질 우려에 미리 주문량을 늘리는 가수요(假需要)가 발생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택배 박스 등 수요도 지난해보다 급증했다”며 “수요 대비 공급이 30% 정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 여파로 박스 가격도 오르고 있다. 대형 홈쇼핑 업체 B사 관계자는 “박스 가격을 인상해주지 않으면 물량 확보가 어려워 15∼20% 인상해줄 계획”이라며 “당장은 아니지만 원가 상승분이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 피해자는 중소 원단, 박스 제조업체들이다. 5대 원지 생산업체들은 원단, 박스 제조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어서 계열사들은 원활하게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업체들은 돈을 더 얹어주고도 물량을 구하지 못해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기도 소재 박스 제조업체 C사 대표는 “소기업에 박스를 납품하는데, 이런 거래처마저 잃을까봐 걱정이 크다”며 “업계가 고사 위기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해법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박스는 100% 주문 제작이라 완성품 형태로의 수입은 불가능하다.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차원에서 중국, 베트남 등 원지 수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입해도 물량이 많지 않다. 제지업체에 골판지 원지 생산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골판지조합 관계자는 “일부 우체국에서 택배 상자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농산물이 본격 출하되는 내년 봄까지 공급난이 해소되지 않으면 충격이 훨씬 클 것”이라며 “제지업체부터 수요 기업까지 모여 해법을 찾을 수 있게 정부가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