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대도시 전염병에 취약’ 인식에 코로나19 후 도쿄 인구 이례적 감소 각 지자체, 보조금 주며 주민 유치 교육-일자리-문화 등 과제는 남아
일본 인재육성 기업 ‘아와에’는 시코쿠섬 도쿠시마현 미나미초의 낡은 목욕탕을 개조해 사무실을 만들었다. 직원이 일하는 자리는 원래 대형 욕조가 놓여 있던 곳이었다. 미나미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박형준 도쿄 특파원
사이퍼텍은 바다에 접해 있었다. 눈앞에 푸른 물결이 반짝였고 사무 및 부대 공간은 널찍했다. 개발자 스미요시 지로(住吉二郞·44) 씨에게 “일터인지 휴양지인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을 건넸더니 “8년째 살고 있지만 나도 그렇게 느낀다”는 답이 돌아왔다.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스미요시 씨는 원래 도쿄의 IT 기업에서 10년 이상 일했다. 집값이 비싼 도쿄 시내 대신 인근 지바에 살면서 매일 출퇴근에 3시간을 허비했다. 취미인 서핑을 하려면 최소 2시간을 차로 이동해야 했다.
8년 전만 해도 스미요시 씨의 이주를 특정인의 돌출 행동 정도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강타한 올해 일본 곳곳에서 비슷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인구밀집 지역이 전염병 대유행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데다 대도시의 비싼 물가와 치열한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방역’과 ‘삶의 질’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지방으로 속속 이주하고 있다. 일본의 해묵은 과제 ‘도쿄 집중’이 코로나19를 계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제기된다.
○ 대도시 주민 유치전 벌이는 지자체
미나미초는 1960년대만 해도 인구가 1만5000명을 넘었다. 지금은 3분의 1 수준인 6200여 명에 불과하다. 젊은층은 도시로 빠져나갔고, 고령자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
미나미초 정책추진과의 가지 준야(鍛冶淳也) 주사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2011년부터 대도시 기업의 ‘위성 사무실’을 유치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부쩍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도시 기업 20개사의 위성 사무실을 유치했다고 덧붙였다.
아와에의 외부 모습(위 사진)과 8년 전 도쿄에서 미나미초의 보안업체 사이퍼텍으로 이직한 스미요시 지로 씨가 일하는 모습. 미나미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NHK에 따르면 인구 약 8000명인 홋카이도섬 히가시카와초는 올해 이주 체험자용 주택 8채를 짓고 전국 각지의 이용자를 모집했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11가구가 지원했다. 인근 가미시호로초 역시 외부인이 일정 기간 살아볼 수 있는 주택을 만들어 매년 50가구 이상 받아들인다. 이주 전 이곳에서의 생활을 직접 체험해보면 이주 의사가 더 높아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즈오카현 후지시는 이곳으로 이사 오는 주민에게 이사비 등 명목으로 최대 50만 엔을 지원한다. 도쿄 인근 이시가와현은 도쿄에서 이주해 온 취업자에게 최대 100만 엔을 지급한다. 에히메현은 행정 차원에서 보조금을 줄 뿐 아니라 선배 이주자가 지방 정착에 대한 각종 조언을 해주는 민간 협력 체계를 만들었다.
○ “지방 활성화 마지막 기회”
일본은 2008년 인구 정점(1억2808만 명)을 찍었다. 이후 고령화 여파 등으로 매년 인구가 줄어 올해 11월 기준 1억2577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는 상황이 다르다. 거품경제 붕괴 위기가 어느 정도 가신 1997년 이후 23년간 예외 없이 인구가 늘어 현재 약 1400만 명이다.
교토대는 2017년 “지방분산형 국가가 일본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도쿄 1극’이 아닌 인구 수십만 명의 ‘극’이 다양하게 퍼져 있는 다극집중 구조를 만들어야 출생률이 올라가고 양극화가 줄어들며 국민건강 수명이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중앙정부 또한 줄곧 지방 살리기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최장수 총리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2014년 9월 지방창생담당상이라는 담당 장관직까지 신설했다. 올해 9월 집권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역시 “눈 많은 아키타현 출신으로 지방 살리기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던 차에 코로나19라는 돌발 상황을 만난 셈이다.
즉 사람, 일자리, 정보가 넘치는 도쿄도의 강점은 전염병이 돌자 감염 위험을 높이는 약점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도쿄를 떠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올해 8∼11월 4개월 연속 도쿄도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많아 도쿄도 인구가 3만5873명 줄어드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졌다. 총리 관저에서도 “이번이 지방 창생(활성화)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중앙정부도 탈(脫)도쿄 적극 지원
스가 정권은 도쿄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우선 원격근무를 택하는 지자체를 지원하기 위해 내년부터 새 교부금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달 중앙부처 관료들이 지방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보는 ‘지방형 텔레워크 시도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지방이전 기업을 지원하려면 먼저 공무원부터 이를 경험해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도 검토하고 있다.
기업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가 최근 회원 기업을 상대로 지방이전 의향을 조사한 결과, 도쿄에 본사가 있는 128개사 중 24개사가 ‘본사기능 전부 혹은 일부 이전을 검토하거나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5년 전 11개사에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보조금 지급 차원이 아닌 지방의 교육, 일자리, 문화 인프라 등을 갖추려는 노력 또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자가 만난 지방 이주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교육’이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대도시만큼 학교가 많지 않고 통학 거리가 멀다 보니 자녀 교육에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단순히 생활비가 싸고 경관이 아름답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자체 일자리를 만들어 내거나, 문화예술 인프라가 적정 수준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도시전략 전문가 오가사와라 신(小笠原伸) 하쿠오대 경영학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도쿄의 매력과 흡인력을 지방이 대체하기는 어렵다. 도쿄 이탈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도시 수준의 문화예술을 양성하려는 지자체가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과연 코로나19가 끝난 후에도 일본의 탈도쿄 움직임은 이어질 것인가. 이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 또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례가 한국에 시사점을 주기를 기대하며 도쿄로 돌아왔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