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 <6> 회한의 삶도 의미있는 이유
영화 ‘레올로’에서 주인공 레올로는 암울한 가정환경에도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레올로는 자신이 꿈을 꾸기 때문에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키노필름 제공
이렇게 묘비에 새길 말을 스스로 쓴 한시를 떠올려 본다. 평생 방랑과 은둔을 반복한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나 태어나(我生)’다.
알려진 것처럼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충격을 받고 세상을 등진 채 평생 정신적 저항을 했다. 우리가 생육신 중 한 사람으로 그를 선양하는 이유다. 하지만 당시에는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 행동으로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승려가 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했다.
장클로드 로종 감독의 자전적 영화 ‘레올로’(1992년)에서도 삶이 곧 꿈꾸기인 소년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레올로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할아버지, 배설에만 집착하는 아버지, 지능이 떨어지거나 정신이 불안정한 형제들 속에서 자신은 꿈을 꾸기 때문에 미치지 않았다고 되뇐다. 소년의 살아가는 방식이 곧 꿈꾸는 일이었다.
완강한 현실의 장벽 앞에서 우리 역시 한시와 영화처럼 꿈꾸는 것밖에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 꿈이 무의미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누군가가 있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김시습은 꿈꾸듯 살다 간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기다렸다. 영화 속 레올로에겐 그를 이해해준 이웃 노인이 있었다. 이 시를 읽는 우리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