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원지법 재심 선고공판서 '무죄' "1988년에 멈춘 시간이 다시 풀린 기분" 재판부 "사법부 구성원 일원으로 사과" 윤씨 향후 일정 미정…검정고시 등 준비
“1988년에 멈춘 시간이 다시 풀린 기분입니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는 17일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에서 진행된 재심 선고공판에서 끝내 무죄를 선고 받았다.
1988년 22세 청년에게 씌어진 살인자의 낙인이 32년 만에 벗겨진 것이다.
이날 재판부는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선고가 피고인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검찰도 지난달 19일 열린 결심에서 “피고인이 이춘재 8차 사건의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확인됐다”며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검찰이 면밀히 살피지 못한 결과 피고인이 억울한 수감생활을 하게 만든 점에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윤씨는 인생의 4할 가까이를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1989년 10월 1심 선고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뒤 3심에서 확정돼 20년을 복역했다.
당시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그를 때렸다. 잠을 재우지 않고, 75시간을 가뒀다. 현장 검증에선 살해된 여학생이 살던 집 담장을 넘으라고 했다. 다리를 절어 담을 못 넘는다고 하자 엉덩이를 들어 올려 그의 몸을 담 너머로 던졌다.
검사와 판사도 윤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피해자의 얼굴도 모르고, 집도 모른다는 윤씨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웠다.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한 주택에서 살해된 박모(13)양의 범인은 그렇게 이춘재에서 윤씨로 뒤바뀌었다.
2009년 42세 나이로 청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된 윤씨는 갈 곳이 없어 청주에 정착했다. 행여 주민이 자신을 손가락질할까 철저히 신분을 숨겼다.
미치도록 억울했지만 폭발할 수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긴 세월을 복역하고 나온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아무리 20년 옥살이를 했다 하더라도 성경에는 용서라는 단어가 항상 나옵니다. 그 용서에는 만 번이고 백만 번이고 용서를 다 해주라고 합니다.”
지나간 세월,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윤 씨는 남을 탓해봤자 자기 마음만 아프다고 했다. 꿈많던 청년은 어느덧 53세 중년이 됐지만, 그의 시간은 1988년에 멈춰 있었다.
그러던 2019년 9월 화성연쇄살인범 이춘재의 신원이 드러났다.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뒤 무기징역을 받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춘재가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 곳은 청주였다. 가짜 범인으로 몰린 윤씨가 복역한 곳과 현재 사는 곳도 청주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11월만 되면 늘 악몽에 시달렸어요. 떳떳하지 못한 아들이라는 점이 늘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떳떳해요. 누명을 벗고픈 간절한 마음이 이뤄져서 너무 기쁩니다.”
윤씨는 향후 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족과 함께 못한 일을 하면서 검정고시에 도전하는 등 제2의 고향인 청주에서 새 삶을 그린다고 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박모(13세)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농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던 윤씨는 이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을 복역했다.
지난해 9월 이춘재의 자백으로 사건을 재수사한 경찰은 지난 7월 윤씨에 대한 강압수사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청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