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전, 멈추고 늦추자]<20·끝>헷갈리는 교통약자 보호구역
최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노인복지관 앞에서 도로교통공단 마스코트인 호동이와 호순이가 어르신 보행자들과 함께 노인보호구역 표지판을 들고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제공
○ 실버존, 꼭 경로당 앞에만 만들어야 하나
국내 도로에는 교통 약자의 안전을 위한 다양한 보호구역이 존재한다. 가장 잘 알려진 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다. 어린이 교통사고 여러 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법 개정은 물론이고 시설도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다른 보호구역들은 아직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실버존이다. 실버존은 고령 보행자의 통행량이 많은 곳에 설정해 차량 속도 제한을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종로구 전통시장 앞처럼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인데도 실버존이 없는 곳이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교통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교통 전문가들도 고령 보행자들의 이동 특성을 고려한 실버존 설정이 중요하다고 봤다. 유상용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통시장은 보행자의 동선이 단절된 구간이 많아 사고 위험이 높다. 병원과 약국은 보행자와 차량이 혼재돼 충돌 위험이 크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서 추진하는 ‘마을 주민 보호구간(빌리지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보호구역이다. 빌리지존은 자동차가 통과하는 도로 주변 마을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도로의 진행 방향을 따라 설치한 구역이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구간을 신설해 현재 총 246개 구간이 운영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마을 주민 보호구간이 설치된 곳의 사고는 15∼35% 감소했다.
이들 보호구역이 제 기능을 하려면 보호구역의 종류를 늘리기보단 일원화해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한 보호구역이 혼재된 상태에서 서로 제한 속도마저 달라 오히려 규정을 준수하기 힘들단 지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호구역을 세분하는 대신 ‘교통약자 보호구역’으로 통일하고, 제한속도도 맞추는 게 실효성이 더 클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정부, 보행권 보장 위한 법 개정
정부도 도로 위 약자들의 안전 증진을 위해 시동을 걸었다. 17일 행정안전부는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보행안전법) 개정안이 22일 공포돼 6개월 뒤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보행자 안전 보장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5년마다 ‘국가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 기본계획’과 ‘연차별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기본계획 없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운 계획대로 보행자 안전 증진 사업을 추진했지만,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운다.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과 보행정책을 계량적으로 측정·비교할 수 있는 보행안전지수를 도입해 정부의 보행사업 예산 배분 기준으로 쓸 예정이다. 지자체의 보행안전 수준도 정부가 직접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교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
○ 특별취재팀
▽팀장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서형석(산업1부) 김동혁(경제부) 정순구(산업2부) 전채은(사회부) 신아형(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