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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금전문제 물의… 프로야구 선수협에 프로가 없다[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12-18 03:00:00

프로야구 선수협 진화하려면




2000년 1월 30일 서울 서초구 동호빌딩에서 열린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 현판식. 왼쪽부터 양준혁(해태), 김재현(LG), 최태원(쌍방울), 김도형 변호사, 송진우 선수협 초대 회장(한화·이상 당시 소속 팀). 동아일보 DB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최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몸살을 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최근 사퇴한 이대호 전 회장(롯데)의 판공비 논란이 불거져서다.

2019년 3월 선수협 제10대 회장에 오른 이대호는 취임 전 2400만 원이던 회장의 연간 판공비를 6000만 원으로 인상하는 데 직접 관여(셀프 인상)하고 이를 현금으로 지급받아 증빙 없이 사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가 데려온 김태현 선수협 사무총장도 법인카드로 지급되던 판공비를 현금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청해 사용해 온 사실이 알려졌다.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이에 이대호는 2일 기자회견까지 열고 “셀프 인상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도 사무총장 관련 사건 등에 대해서는 사과한 뒤 자진 사퇴했다. 선수들의 투표로 최근 제11대 회장에 뽑힌 양의지(NC)는 “회계감사를 통해 약 50억 원의 돈이 증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환수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 잊을 만하면 논란, 왜?


선수협에서 불투명한 금전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11년 손민한 회장(당시 롯데) 재직 시절 당시 사무총장이 야구게임 회사로부터 선수들의 초상권 독점계약과 관련해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고 선수협 기금 16억 원을 횡령한 사실 등이 밝혀져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회장에게 지급되는 판공비 또한 급여 성격으로 지급돼 와 증빙 등을 놓고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대호는 기자회견에서 “초대 회장부터 관행처럼 현금으로 지급돼 와 문제의 소지가 있을지 몰랐다. 누가 회장 자리에 앉았더라도 (나처럼) 지적받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복되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현역 선수가 아닌 다른 인물을 ‘회장’으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선수협 초대 회장을 지낸 송진우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은 “명망 있는 은퇴선수가 회장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역 선수들의 고충은 현역 선수만이 알 수 있다”는 의견을 냈던 이대호처럼 ‘현역 선수가 회장이 돼야 한다’는 반론도 거세다.

선수협 안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전권을 휘두르기 좋은 구조라 잡음이 쏟아진다는 지적도 있다. 회장이 운동에 집중하는 사이 사무총장이 모든 행정을 도맡다 보니 빈틈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대호의 회장 취임 후에도 마케팅 전문가라고만 알려진 김 사무총장이 전격 영입됐다. 이후 선수협에 마케팅 관련 인력이 증원되는 등 김 사무총장 중심으로 판이 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부의 세세한 일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이대호도 “문제가 생긴 뒤 사무총장에게 ‘그러면 안 됐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회장이 된 뒤 사무총장 추천 민원을 받았다는 양의지는 “사무총장은 공모를 통해 서류를 받고 이사들이 심사를 하고, 최종 후보를 추려 면접을 볼 계획이다.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과정을 거쳐 진짜 일을 하실 분을 모셔올 것”이라고 공표했다.

○ 보복 트레이드, 강제은퇴 희생 위에 탄생


선수협은 “고(故) 최동원 선수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혼자 거두며 롯데의 우승을 이끌었던 ‘슈퍼스타’는 4년 뒤인 1988년 당시 구단의 소유물로 취급받던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회) 결성을 주도했다. 2017년 이호준 회장이 자진 사퇴한 이후 2년 가까이 공석이던 회장을 “KBO리그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가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동원은 1979년 5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끼리의 매질은 참을 수 없다”는 폭탄 발언을 하는 등 현역생활 내내 선수들의 권익 증진에 관심이 많았다. 선수회 결성 당시에도 “어려운 동료나 불우한 후배를 돕자는 취지에서 나처럼 연봉을 많이 받거나 여유 있는 선수들이 앞장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고 최동원이 선수회를 추진할 때 법률 자문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최동원의 꿈’은 싹도 틔울 수 없었다. 선수회 결성 움직임을 포착한 구단들의 압박 속에 롯데를 상징하는 스타였던 그는 1988년 11월 ‘보복 트레이드’로 삼성으로 이적했고, 1990시즌 후 은퇴하는 등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2000년 양준혁(당시 삼성) 등의 주도로 선수협이 1월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참여선수 전원(75명)의 방출을 발표하는 사건도 터졌다. 지도부 방출 등의 수난을 겪었던 선수협은 2001년 1월 야구팬들과 정치권의 지원 속에 KBO의 승인을 얻은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선수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선수협은 그동안 물의를 빚는 일이 더 많았다. 2001년 9월에는 외국인 보유 수 축소를 주장하며 포스트시즌 보이콧을 선언했고, 2017년 3월에는 메리트(승리수당) 제도 부활을 요구하며 팬 서비스 불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팬들의 비난 여론에 번번이 철회되긴 했지만 팬들로부터 “자신들의 이권만 챙긴다”는 지탄을 받았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여전히 선수협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995년 1000만 원 이후 10년 동안 요지부동이었던 신인 선수들의 연봉은 선수협이 출범한 뒤 2000만 원(2005년), 2400만 원(2010년), 2700만 원(2015년)으로 조금씩 올랐다. 또한 지난 시즌부터 시즌 도중 출산 등 경조사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선수 권익이 향상됐다.

양의지는 “선수협이 약하다는 소리를 안 듣게 하겠다”며 김현수(LG), 황재균(KT), 이재원(SK) 등 2006년 입단 동기들을 부회장으로 임명하는 등 쇄신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최근 구단들의 2차 드래프트 폐지 움직임과 맞물려 반대 성명을 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야구팬 및 일반인을 상대로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게 대표적이다. 그 결과 KBO 이사회가 2차 드래프트 폐지 재검토에 들어가도록 하는 성과를 올렸다.

○ 한국형 선수단체의 바람직한 모습은


현재 선수협은 사단법인이다.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선수협 자체로 KBO 및 구단과의 교섭이 불가능하다. 또한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도 할 수 없다. 이대호는 “선수협이 힘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선수협을 노조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노동조합(MLBPA) 같은 조직이 있어야 선수들의 권익이 본격적으로 향상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계 최강 노동조합’이라고도 불리는 MLBPA의 권한은 막강하다. 2020시즌을 앞두고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후 구단들은 경영난을 호소하며 선수단 연봉 삭감을 주장했다. 하지만 MLBPA와의 엄청난 기 싸움을 벌여야 했다. 선수들은 본래 받던 연봉의 37%만 받기로 합의했는데 한 시즌 팀당 경기 수도 그에 비례해 162경기에서 60경기로 줄었다. 1994시즌 이후 구단들이 선수들의 치솟는 연봉 부담을 막기 위해 ‘샐러리캡’ 도입을 추진하자 MLBPA는 파업으로 맞섰고, 1995시즌 개막이 연기돼 팀당 162경기가 아닌 144경기로 치러졌다. 파업을 불사하는 MLBPA 덕분에 선수들은 은퇴 후 연금까지 받는 복지를 누리며 안정적인 환경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MLBPA가 한국 선수협과 다른 점은 1966년 출범 이래 최초 선수 출신 위원장이 지금의 토니 클라크(46)일 정도로 선수 대신 스포츠 행정 분야 전문가들이 조직을 이끌어왔다는 점이다. 클라크 또한 선수 출신이지만 현역 은퇴 후 MLBPA 집행부에서 수년 동안 경험을 쌓은 뒤 비로소 단체를 이끄는 자리에 올랐다. MLBPA의 기틀을 혁혁하게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마빈 밀러(작고) 초대 위원장도 경제학을 전공한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선수=노동자’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권익 증진에 힘쓰며 최저연봉제와 자유계약선수(FA) 제도 등을 도입하는 데 기여했다.

단체 운영금 마련도 한국과 차이를 보인다. MLBPA는 선수들 연봉에 비례해 1% 미만을 걷지만 적립식으로 5년마다 선수들에게 돌려준다. 온전히 돌려주지 못할 경우 위원장이 각 팀 스프링캠프지를 방문해 이를 꼼꼼하게 설명한다고 한다. 선수들의 초상권 수익 등을 주로 활용해 운영한다. 반면 한국의 경우 모든 선수들의 연봉 1%로 걷은 8억 원 규모로 1년 살림을 꾸린다. 하지만 용처가 선수들에게 투명하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매번 돈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선수협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미국과 한국은 시장 규모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회장이 바뀌면 사무총장 등 주요 구성원이 바뀌고, 조직의 성격마저 바뀌며 장기적인 비전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야구산업은 과거와 달리 규모가 커지고 있다. 스포츠에 애정이 깊은 전문가들을 모셔와 안정적으로 조직을 꾸려 나간다면 현재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