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 지음·오현아 옮김/432쪽·1만6800원·마음산책

좌우로 갈린 미국의 상징이 돼 버린 러스트벨트. 하지만 제철소 안 용광로 속에서는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 빛을 발한다.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의 저자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는 죽음과 부상에 언제나 노출된 위험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이들 틈에서 ‘진짜 삶’을 배운다. 동아일보DB

“조심해. 까딱하다가는 기계가 자네를 집어 삼킬지도 몰라.”
제철소에서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진실이다. 높은 화통과 크레인, 반짝이는 것이라곤 철강밖에 없는 곳. 잠시 방심하는 사이 컨베이어벨트 강재 사이에 사람이 깔려 죽는다. 하지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일터에 첫발을 들인 이들에게 유효한 경고이기도 하다. 안정적 수입, 잘 갖춰진 복지혜택. 세계적 불황과 취업난 속에서 현실과 타협해 간신히 비집고 들어온 이곳에, 어린 시절 꿈꿨던 이상적이고 고상한 일상 같은 건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삼켜지기 십상이다. 그것이 기계이든, 조직이든, 일 자체이든 말이다.
러스트벨트는 제조업 활황기 미국의 옛 영광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현재 미국 사회가 이르게 된 다양한 문제가 뒤엉킨 곳이다. 이 때문에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곳이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페미니스트, 영문학 교수를 꿈꿨던 저자가 철강소에 입사해 겪게 되는 모든 과정은 흥미로운 개인서사를 넘어 현대 미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미시적으로 증언한다. 페미니즘, 총기 등의 주제를 놓고 가족, 동료와 부딪치는 진보주의자지만 한편으론 자신들을 ‘시골뜨기’ ‘블루칼라’로 분류해버리는 동부의 ‘화이트칼라’ 엘리트에게 편견과 반감을 갖지 않기 힘든 처지다.
하지만 저자 자신조차 벗어나지 못했던 러스트벨트 노동자에 대한 통념은 늘 산재가 도사린 위험한 현장에서의 동료애, 정직한 노동과 공정 속에 녹아들며 조금씩 와해돼간다. 뿌리 깊은 개인주의, 성과주의 문화 속에서 자라온 젊은 여성이 노동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는 성장 스토리가 아름답고 흡인력 있는 문체로 그려졌다. “제대로 바라보면 불꽃은 숨을 멎게 한다. 그 불빛 속에서 제철소는 거의 신성해 보인다”는 마지막 문장은 분열 속 미국이 그리워하는 어떤 이상(理想)처럼 읽히기도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