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인생 동안 열두 곳 집에 거주 열두 권 앨범 가진 것과 같은 의미 사람들은 늘 집에 대해 할 말 많아 집은 사연 품은 채 함께 늙어간다
윤고은 소설가
그날 방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의 집이 떠올랐다. 실수로 쏟은 팝콘 봉지도 아닌데 왜 이리 뒤늦게 주워야 할 집이 많단 말인가. 그런데 막 생각난 그 집을 내 역사에 편입시켜야 할지 말지를 두고 나는 좀 고민해야 했다.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40일간 머물렀던 임시거처였기 때문이다. 단기임대했던 공간을 내가 살았던 집으로 본다면 나는 41년간 모두 열세 곳에서 살아본 사람이 되는 거고, 그 공간을 포함하지 않으면 나는 41년간 모두 열두 곳에서 살아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열셋과 열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에 대해 나는 남편과 상의까지 했다. 정확히 말하면 상의라기보다는 또 다른 수다의 시작이었고 그럴 것임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집이란 수다의 풍성한 재료가 되고 사람들은 늘 집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거기선 사진 한 장 찍은 게 없잖아? 그래서 집이란 느낌이 안 드는 건가?” 내가 말하자 그가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한 장이 또 미처 발견 못 한 팝콘처럼 구석에서 나온 셈이라 나는 얼른 말을 고쳤다. “거기선 사진을 찍은 게 거의 없잖아?” 그러자 그가 말했다. “떠날 시점이 분명해서 그런 거 아닌가? 40일 후에 떠난다, 그게 확실해서?” 우리의 기억 속에 그곳은 집이 아니라 경유지 정도였다. 너무 짧게 머물렀고, 사진으로 남은 것도 별로 없고, 캐리어 몇 개 말고는 가지고 들어간 것이 없으니 정이 든 가구도 없고, 그곳을 떠날 시점을 명확히 알았다는 이유 말고도 중요한 건, 거기 머무는 내내 우리가 다른 집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곳이 임시거처라는 생각을 잊을 필요가 없어서 거기서 늘 리모델링 중인 다른 집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집은 다른 집 안으로 흡수되고 만다. 마치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예열의 시간처럼.
열두 번째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은 열두 권의 앨범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오래전 앨범 속에는 나와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한 앵글 속에 우연히 잡힌 다른 사람들도 보이는데, 요즘엔 그런 것들이 새삼스레 중요한 정보 같다. 내가 모르는 새 스친, 이 사진 속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까, 그런 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 열두 번째 앨범이 어떤 풍경을 담아낼지 나는 모른다. 다만 언젠가 이 앨범을 떠올리며 내가 무궁한 호기심과 안부에 사로잡힐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윤고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