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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경제인도 “기업만 다그치나”[현장에서/김현수]

입력 | 2020-12-21 03:00:00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올해 10월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의 ‘공정경제 3법 정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현수 산업1부 차장

“다른 나라 정부도 바보는 아닙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다른 나라에 (3%룰이)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힘줘 말했다. 그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기업만 다그쳐선 곤란하다”고도 했다.

손 회장은 17일 일부 기자들과 가진 비공식 차담 현장에서 이같이 말했다. 경제계 원로인 손 회장은 평소 점잖은 언행으로 유명하지만 이날은 정부·여당에 대한 날선 비판도 적잖게 나왔다. ‘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에 이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도 국회를 통과하자 재계가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손 회장은 “전례 없는 팬데믹이 덮쳤다. 저도 기업 오래 경영했지만 올해처럼 힘든 해는 1998년 외환위기 빼고 없었다. 여기에 더해 상법 등 기업 부담이 커져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 선임 및 의결권 3% 제한으로 해외 투기 자본 측 인사의 이사회 입성이 더욱 쉬워졌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기업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손 회장은 “의결권 3% 제한은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생각한다. 헌법상 문제도 있다고 보인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재계가 무력감을 느끼는 지점은 ‘어디에도 우리 편은 없다’는 것이다. 어렵다고 하면 정치권은 ‘엄살’로 일축한다는 것이다. 여야 지도부를 만나 직접 설득에 나섰던 손 회장은 “여당은 정치적인 이념에서 정한 것은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더 아쉬운 점은 야당도 노선이 불분명하고, 내부에서 서로 목소리가 달랐다는 것”이라고 했다. 경총에 따르면 올해 21대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법안 중 기업을 옥죄는 법안은 213건이었지만 기업을 지원하는 법안은 한 건도 없었다.

정부도 기업을 외면하고 있다. 경제 3법뿐만 아니라 해고자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노조의 공장 점거는 막지 않는 노조법도 정부 입법에서 출발했다. 손 회장은 “정부가 너무 노조 편향적이라 노사 간 대타협이 어렵다. 1988년부터 30년 넘도록 언제까지 이렇게 (노사 갈등이) 가야 하나.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다. 산재 발생 시 최고경영자(CEO)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예방책은 소홀히 하고 CEO를 처벌할 수 있으니 알아서 잘 막으라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기업만 다그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계와 경쟁하는데 한국 기업 앞에만 장애물이 높아지고 있다. 오죽하면 재계에서 “정부·여당만 기업이 한국에서만 경영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나올까. 그럼에도 원로 경제인의 간곡한 호소조차 ‘엄살’ 정도로 묵살될까 두렵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