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온라인에 밀려 문닫는 백화점-마트… “매장 용도 다양화가 살길”[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12-21 03:00:00

백화점-대형마트의 생존법




올해 5월 폐점한 충북 청주시의 롯데백화점 청주 영플라자점(위쪽 사진)과 이달 말까지 영어하고 문을 닫는 대구 북구 롯데마트 칠성점. 롯데쇼핑 제공

황태호 산업2부 기자

대구 북구에 있는 롯데마트 칠성점은 자체 브랜드(PB) 상품, 잡화 등을 90% 이상 할인 판매하고 있다. 2017년 개점 3년 만인 이달 31일 폐점을 앞두고 벌이는 ‘고별전’이다. 약 400m 거리에 있는 홈플러스 대구점도 최근 매각됐고 내년 말까지 영업한다. 대형마트 ‘빅3’가 모두 인접해 있어 ‘마트 전쟁’의 상징과도 같은 이곳에서 이마트 칠성점 단 하나만 살아남았다. 대구 주민 김보은 씨(43)는 “10여 년 전만 해도 주말이면 이마트나 홈플러스에 들어가려는 차로 도로가 꽉 차곤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차로 30분이면 다녀올 수 있던 대형마트, 백화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올해 10월 기준 국내 대형마트 점포 수는 총 396개로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400개 아래로 줄어들었다. 롯데쇼핑은 올해 롯데마트 대구 칠성점 외에도 11개 점포의 폐점을 결정했다. 서울 구로구 구로점, 도봉구 도봉점 등 서울 내 점포라고 예외는 아니다. 홈플러스 역시 대구점 외에도 대전둔산점, 대전탄방점, 안산점 폐점을 결정했다. 이마트의 경우 올해 7월 19개월 만에 새로 연 서울 신촌점이 마지막 신규 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백화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년 2월 서울 영등포구 현대백화점 여의도파크원점을 시작으로 6월 경기 화성시 롯데백화점 동탄점, 8월 대전 유성구 신세계백화점 사이언스콤플렉스를 열면서 출점 경쟁을 이어가는 듯하지만 유통업계에선 각사의 마지막 신규 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이 인천, 안양, 부평점과 영플라자 대구점, 아웃렛 인천점을 폐점하고 올해 영플라자 청주점의 영업을 종료하는 등 사라지는 백화점 수가 더 많다.

○ 핵심 매출원 ‘식품-패션’ 수익 감소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왜 사라지고 있을까. 일단 이들 산업의 매출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유통업체 매출 동향을 보면 지난해 대형마트의 식품 매출 비중은 61.1%에 이른다. 반대로 백화점은 잡화를 포함한 패션 상품 비중이 75.6%다. 소비자들에게 대형마트는 먹을거리, 백화점은 입을 옷을 사러 가는 곳이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식품 매출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감소세다. 올해는 5%의 낙폭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도 지난해 20% 가까운 매출 성장세를 보인 해외 럭셔리 브랜드를 제외하면 여성 캐주얼(―11.1%), 여성 정장(―6.9%), 아동·스포츠(―5.8%), 남성의류(―3.5%) 등 모든 패션 부문이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패션이라는 주매출원이 흔들리면 가정, 식품 등 다른 부문도 매출이 동반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옷 쇼핑을 하러 왔다가 먹을거리 장도 보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 일부 점포는 ‘문을 열면 손해’인 상황에 부딪혔다. 높은 고정비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248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3분기(7∼9월)까지 328억 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 중이다. 홈플러스도 2019 회계연도(2019년 3월∼2020년 2월) 영업이익이 1602억 원으로 전년(2600억 원) 대비 38% 줄어들었다.

대형마트 3사 중 그나마 선방했다고 평가받는 이마트도 ‘폐점 없는 자산유동화’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13개 점포를 매각한 후 임대매장으로 전환하며 약 1조 원의 현금을 확보한 이마트는 올해도 3월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이마트트레이더스 부지를 매각한 데 이어 인근 가양점도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세일앤드리스백 방식으로 당장 영업을 중단하지 않았지만 유통업계에선 “임대매장은 계약기간에 따라 보다 쉬운 폐점이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백화점도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면세점 쇼핑 수요가 백화점으로 몰린 덕택에 늘어난 해외 럭셔리 브랜드 매출이 없었다면 훨씬 더 심각한 실적 악화를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코로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마트의 ‘존재 이유’였던 식품 판매는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쌀이나 물, 과자 등을 시작으로 조금씩 늘어나던 온라인을 통한 식품 소비는 새벽배송이 등장한 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전문업체 마켓컬리의 매출은 2017년 466억 원에서 2018년 1571억 원, 지난해에는 4290억 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1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전문 업체는 물론이고 신세계 SSG닷컴, 롯데쇼핑 롯데온, 현대백화점 투홈 등 새벽배송 서비스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유통업계에선 “단순히 코로나19의 확산만 온라인을 통한 소비 폭증의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벽배송은 ‘온라인 장보기’의 장벽으로 작용하던 ‘신선식품 비대면 구매’의 불편함을 해소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직장인들은 전업주부와 달리 근무시간에 배송된 신선식품이 상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퇴근하면서 장을 보는 것을 상대적으로 선호했다”며 “새벽배송으로 출근 전에 신선식품을 냉장고에 넣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변질이 쉬운 신선식품인 우유의 온라인 구매는 새벽배송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간편식(HMR)의 확산도 대형마트에는 악재다. 확실한 경쟁력이었던 ‘신선한 품질’이 HMR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비고 깍두기 볶음밥’은 대형마트에서나 쿠팡에서나 모두 똑같은 질의 제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싸고 보다 편리한 온라인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우아한형제들의 ‘배달의민족’ 서비스로 시작된 촘촘한 외식 배달 서비스도 대형마트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다.

백화점의 침체에 대해서는 “코로나19가 진정돼도 변화한 소비 행태가 되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백화점 산업이 위기에 빠진 원인 중 하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서 시작해 전 세대로 확산하고 있는 ‘야누스 소비’다. 일부 품목은 값비싼 해외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면서 다수 생필품은 인터넷 최저가를 찾아나서는 소비 행태를 뜻한다. 과거와 달리 백화점 입점을 선호하지 않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부상도 백화점 입장에선 뼈아프다.

백화점이 제공해 왔던 ‘소비자 경험’에 필적하는 비대면 커머스 서비스의 등장도 또 하나의 원인이다. 인플루언서가 대신 옷을 입어보거나 화장품을 발라보며 진행하는 ‘라이브커머스’, 가상현실(VR) 기술에 기반한 ‘가상매장’ 등이다. 특히 가상매장은 브랜드 고유의 콘셉트나 분위기를 전달하는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과 비대면의 편리함, 그리고 여기에 각종 동영상 서비스까지 더할 수 있는 서비스로 각광받고 있다.

○ ‘옴니채널’ 승부수 던져야 산다


그렇다면 대형 오프라인 점포는 사라질 것인가.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품의 다양성, 합리적인 가격, 배송의 편리함 등에서는 온라인 시장이 오프라인에 비해 우월하지만 고객은 온라인 쇼핑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체험이라는 부분을 충족하기 위해 여전히 오프라인 쇼핑을 포기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 온라인 공룡들이 오프라인 시장까지 넘어오는 것 역시 기존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지닌 장점 때문이다. 아마존은 홀푸드를 인수하고 무인매장 ‘아마존 고’, 식품매장 ‘아마존 그로서리’ 등을 론칭했다. 중국 알리바바 역시 회원제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셩(盒馬鮮生)’을 운영하며 오프라인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미국 월마트의 부활은 국내 대형 유통업체에도 시사점을 준다. 코로나19에 죽을 쑤고 있는 한국 대형마트와 달리 미국 월마트는 2020 회계연도 3분기(8∼10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2% 늘어난 1347억 달러(약 146조8230억 원),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2.5%나 증가한 58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기간 온라인 매출은 80% 증가했는데 전통적 오프라인 인프라에 온라인을 성공적으로 접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상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미국 내 거미줄처럼 넓게 분포하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의 거점으로 변화시켜 매장 내 픽업 서비스, 온라인 상품에 대한 매장 반품 및 즉시 환불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옴니채널’ 전략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는 SSG닷컴 전용 물류센터와 함께 기존 오프라인 점포를 SSG닷컴의 ‘PP(Picking & Packing)센터’로도 사용하고 있다. 롯데쇼핑도 부진한 마트를 물류 거점으로 역할을 변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오프라인 점포를 단순한 판매 공간에서 나아가 가족, 연인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건 대형마트와 백화점 모두 채택하고 있는 전략이다.

국내 유통업체들도 촘촘한 오프라인 매장과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고 오프라인 체험 서비스를 더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점포의 기능을 단순히 판매가 아닌 온라인 사업의 물류 기반이자 소비자의 브랜드 체험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문제는 속도”라고 강조했다. 빨리 변해야만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황태호 산업2부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