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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규제 풀어야 4차산업 성공… 韓, 규모 크다고 대기업 차별 안돼”[파워인터뷰]

입력 | 2020-12-22 03:00:00

日총리의 경제교사 다케나카 헤이조 교수가 본 스가 정책
日, 디지털 인프라 최고지만 ‘운전은 반드시 사람이’ 등 규제
자율주행차 최첨단 기술 빛 못봐




10월 30일 일본 도쿄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다케나카 헤이조 도요대 교수 겸 전 총무상.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구조조정 전도사’로 불렸던 이력을 반영하듯 인터뷰 내내 “건전한 경쟁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고 강조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려면 디지털 분야의 규제 완화가 필수입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경제교사로 평가받는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69) 도요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겸 전 총무상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엄청난 디지털 인프라를 가졌지만 규제 때문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디지털화를 막는 각종 규제를 없애야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케나카 교수는 2005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의 총무상으로 재직하며 당시 총무 부대신(차관)이던 스가 총리와 연을 맺었다. 스가 총리는 올해 9월 취임한 지 사흘 만에 민간 경제전문가 중 가장 먼저 그를 만나 경제정책 조언을 구했을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일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악화, 정권에 비판적인 학자들에 대한 탄압 논란 등으로 최근 스가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세임에도 “경제를 살리면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케나카 교수는 정계 입문 전 게이오대 교수를 지내며 한국 정부의 자문위원을 지낸 경력도 있다. 그는 “한국 경제의 발전 또한 과감한 재벌 재편 및 경쟁에서 이뤄졌다”며 경쟁이 경쟁력을 낳는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10월 말 그를 직접 만나 진행했고 이후 이달 17일 전화 통화를 추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9월 스가 총리를 만났을 때 무슨 조언을 했나.

“작은 성공(small success)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국민이 ‘스가 정권은 과거 정권과 다르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청을 설립하자고 건의했다.”

―왜 디지털청인가.

“일본은 엄청난 디지털 인프라를 갖고 있다. 세계 최초로 모든 TV를 디지털화했고 거의 모든 국민이 인터넷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일각에서 일본의 디지털화가 약하다고 보는 이유는 규제 때문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탓이다.

지금 전 세계에 4차 산업혁명이란 큰 흐름이 등장했다. 이를 대표하는 산업인 자율주행차만 봐도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센서, 카메라 등 자동차 관련 각종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자율주행차 개발 속도가 느리다. 도로교통법 규제로 차량이 도로를 달릴 때 반드시 인간이 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의 도로 위 실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를 앞설 수 없다. 이런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려면 규제 완화, 특히 디지털 분야의 규제 완화를 꼭 해야 한다.”

―스가 내각의 지지율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위기라는 지적이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 정계에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관방상과 자민당 참의원 의원회장을 지낸 정계 거물인 그가 ‘내각 지지율과 자민당 지지율을 합해 50% 아래로 떨어졌을 때 진짜 위험하다’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 아직 스가 내각과 자민당의 합산 지지율은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총리가 정책을 마음껏 펼칠 힘과 여유가 있다.”

마이니치신문 조사 기준으로 9월 집권 직후 64%였던 스가 내각의 지지율은 이달 12일 40%로 24%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날 자민당 지지율은 33%였다. 이 둘을 합치면 73%로 아직 여력이 있다는 것이 다케나카 교수의 주장이다.

―총리가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미세 정책에만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비판이 있다.

“틀린 비판이다. 스가 총리가 집권 직후 실시한 휴대전화 요금 인하 정책을 보자. 일본의 휴대전화 요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공공 전파를 할당받은 회사 3곳이 과점을 통해 가격을 높게 유지했기 때문이다.

스가 내각은 이것이 건전한 경쟁이 아니라고 보고 칼을 들이댔다. 볼링 경기에서 핀 10개 중 가장 중앙의 핀을 무너뜨려야 나머지 9개 핀이 쓰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휴대전화 정책은 중앙 핀 공략에 해당한다.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통해 전 산업에 ‘제대로 경쟁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으니 이로 인한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또한 각론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전체가 바뀔 수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늘 내게 ‘우리는 각론을 한다. 총론은 놔두라’고 했다. 총론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무엇이든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총론은 간단하지만 각론은 어렵다.”

다케나카 교수는 ‘금수저 세습정치인’이 대부분인 일본 정계에서 드물게 본인 능력으로 두 차례나 장관직에 올랐다. 그가 게이오대 교수 시절인 2001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정보기술(IT), 금융업 등을 총괄하는 경제재정담당상으로 발탁됐을 때 ‘정치인이 독식하던 장관직에 교수를 앉힌 것 자체가 고이즈미식 개혁의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이후 우체국 민영화의 주무 부서인 총무상까지 맡아 고이즈미 정권 내내 ‘구조조정 사령탑’ 역할을 했다.

이런 이력 때문인지 그와 인터뷰하는 내내 정치인이 아닌 컨설턴트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질문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명확하게 답했고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들었다.

―스가 총리가 지지율 하락을 돌파하기 위해 주력해야 할 점은….

“경제를 살리는 게 급선무다. 최근 3차 추가 경정예산을 편성한 것은 긍정적이다. 총리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국내 여행을 장려하는 ‘고투트래블’ 캠페인을 일시 정지시켰는데 개인적으로는 캠페인을 지속하면서 코로나19 진단검사 확충 등 방역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강제하기보다 개인의 자율적 방역을 유도하다 보니 확진자가 늘어난 면이 있다.”

―스가 정권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조(自助·스스로 돕기), 공조(共助·서로 돕기), 공조(公助·국가 간 돕기)’를 주창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약자에게 가혹한 정책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말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국가가 도울 수 있다. 어떤 배가 침몰했을 때 구명정에 전원을 태울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여성, 어린이, 노약자를 먼저 태우고 스스로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헤엄치게 내버려둬야 한다. 같은 원리다.”

―총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모든 사안을 혼자 결정하고 밀어붙이면서 일종의 ‘공포 정치’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리더십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다. 또한 총리 관저의 지원 체계가 약하다. 홍보, 전략 파트 등 각 분야에서 제대로 총리를 보좌하지 못하고 있다.”

스가 총리는 일본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던 11일 인터넷 생방송에서 “안녕하세요. 가스(스가 총리의 별명)입니다”라고 웃으며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여파가 가시기도 전인 14일에는 ‘4인 이하 식사’를 권고한 정부 방역지침을 어기고 하루 저녁에 두 차례의 연속 모임을 가져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이에 자민당 일각에서는 “총리도 문제지만 보좌진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 스가 총리와 함께 일했던 경험은 어땠나.

“금융담당상으로 재직할 때부터 연이 깊다. 당시 금융권의 불량채권 문제를 처리하려 하자 자민당 의원조차 많이 반대했다. 불량 채권을 손실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기업이 많이 나오는데 일부 의원 및 관료가 해당 기업과 직간접적인 유착 관계를 맺었던 탓이다.

그때 스가 총리,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담당상,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군마현 지사 등 몇몇 의원이 ‘당신이 하는 정책이 옳은 방향이니 힘내라’며 모임을 만들어 적극 지원해줬다. 모임 이름까지 내 이름 한자에 들어간 ‘대나무 죽(竹)’을 빗대 ‘대나무 점심’으로 정했을 정도다. 대부분 젊은 의원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높은 어르신이 됐다.

스가 총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숨김없이 직진하는 스타일이다. 또 끈기 있게 일을 했다. 부대신 시절 세 살 어린 나를 장관으로 모셨지만 한 번도 티를 낸 적이 없다.”

―과거 한국 정부에 자문한 경험이 있다. 한국 경제에 조언을 해준다면….

“한국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매우 과감한 재벌 재편을 실시했다. 그 결과로 강한 경쟁력을 가진 세계적 기업을 여럿 배출했다. 이것이 한국이 이룬 엄청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꾸준히 강한 경쟁력을 지니려면 건전한 경쟁이 필요하다.

기업 규모가 크건 작건 상관없다. 건전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분명히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다.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정부가 대기업을 차별하는 정책을 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69)
△ 1951년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출생
△ 1973년 히토쓰바시대 경제학부 졸업, 일본개발은행 입사
△ 1982년 대장성(현 재무성) 재무금융연구소 주임연구원
△ 1990년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교수
△ 2001년 경제재정담당상(IT·금융담당상 겸임)
△ 2004년 참의원 의원 당선
△ 2005년 총무상(우정민영화담당상 겸임)
△ 2006년 정계 은퇴, 게이오대 교수 복귀
△ 2016년∼현재 도요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김범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