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은 그런 노력이 죄스럽게 느껴진다. 끝나지 않은 고통이 더 크게 입을 벌리고,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런 경우도 있기는 했다. 음력 기준, 1636년 12월 15일 오후 인조와 대신들이 남한산성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이때부터 한 달 이상 남한산성에서 국운을 건 수성전이 벌어진다.
유달리 추웠던 그해 성벽 위의 병사들은 해진 가마니를 덮고, 화톳불을 쬐며 밤을 새웠다. 수성전이라고 성벽만 지키지는 않는다. 간간이 성문을 열고 야습과 기습을 감행했다. 청군은 야전 경험이 풍부한 군대였고, 조선군은 실전 같은 훈련조차 부족했던 군대였다. 청군은 조선군은 싸움을 모르는 군대라고 비웃었지만, 실전을 시작하자 조선군의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때 이수림과 오영발이라는 두 명의 용사가 등장했다.
인조는 이런 집안 내력과 용기에 감동을 받아 “당상관을 주라, 장수로 등용하라”고 말했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관료들은 규정을 따졌다. 당상관은커녕 이수림이 받은 관직은 하급 명예직이었다.
전사했다는 이수림의 숙부는 이름도 모른다. 백성이 없으면 임금도 없다고 말은 잘하지만 정작 나라를 위해 분노하고 헌신한 사람들은 찾아 기록하지도 않고, 포상은 자기 살 베어주듯이 아낀다. 그것이 수백 년간 이 땅에 축적된 분노가 되었다. 새해에는 달라질까?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