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
이 1인 출판사에 책을 낸 만화가 친구도 있다. 1인 출판사와 이름 없는 만화가의 조합은 잘 풀리기 어렵다. 웹툰 시대에 어울리는 그림 스타일도 아니다. 발표할 지면 찾기가 어렵고 먹고살기 정말 힘들다. 그런데도 궁둥이가 쑤시도록 앉아 그림을 그린다. 눈알이 빠질 것 같고 허리가 비틀어져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굶어죽어도 좋으니까 하는 것은 아니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루어지기 어렵지만 우리의 대화는 늘 이렇게 끝난다. “조금만 참아보자. 좋은 날 오겠지!”
요리사 친구도 있다. “맛있는데 너무 비싸다!” 손님들이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푹 주저앉아버린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신선한 재료를 찾고 정성들여 요리했던 긴 시간들이 허무해진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은 당연히 이윤을 남겨야 하지만 그것만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맛있는 국물을 내기 위해 전국의 해산물 시장을 뒤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더니 어느 날 남쪽 바다로 가버렸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성비 갑’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싱싱한 해물들을 구할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손님이 많지 않기에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
바닷가 요리사에게 우리 밀로 빵을 구워주는 친구도 있다. 그녀는 밀가루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물만 넣어 발효종을 만든 뒤 그것으로 반죽을 한다. 밀가루에도 수많은 살아있는 야생 효모가 붙어 있고, 그들의 생명을 일으켜 빵을 발효하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렇게 빵을 만들어본 사람은 쉬운 빵을 만들기 어렵다. 모든 것이 가짜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빵집을 열어라 빵집!” 내가 먹어본 빵 중 최고였기에 빵집을 열라고 조르지만 돈을 벌지는 잘 모르겠다. 값싼 외국 밀가루에 이스트로 부풀린 빵과의 가격 경쟁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와 점점 멀어져 간다.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일 년에 와인을 몇 번 만드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와인은 일 년에 과일이 수확될 때 한 번밖에 만들지 않는다. 착즙을 한 뒤 겨울 내내 탱크갈이를 하고 봄에 병입을 한다. 병 속 발효가 진행되면 그 찌꺼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다시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거쳐 한 병의 와인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의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힘들게 만드는 이유가 뭐죠?” 이런 질문도 받는다. 솔직히 나대신 누군가 이렇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러면 이것저것 안 따지고 그것을 살 것이다.
일은 죽도록 하는데 돈이 안 되면 인생이 고달프다. 그런데도 그 일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자신의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빵 친구는 자신의 빵을 좋아하고, 출판사 대표는 자신의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소수라도 좋아하는 팬들이 생기니 그것으로 힘을 얻는다. 나에게도 좋고 다른 사람과 나누어도 좋은 것을 만든다는 행복감 때문에 계속 나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살다 보면 분명 그런 날 올 거야. 파이팅!” 돈 안 되는 친구들과의 전화 통화는 대체로 긍정 마인드로 다시 무장하며 끝이 난다. “그런데, 너 아니? 그런 말 들은 지 벌써 20년째다!”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신이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