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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의료정책 이야기]코로나로 에이즈 감염관리 비상

입력 | 2020-12-23 03:00:00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검사 과정. HIV는 일반적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전 세계 61개국에서 에이즈(AIDS)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성병 및 간염에 관한 검사 및 예방 서비스가 중단될 위기를 겪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7월에 남긴 논평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우려가 한국에서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코로나 검진 외 보건소의 대국민 의료서비스가 중단되면서 HIV/AIDS 관리에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이다.

12월 첫 주 질병관리청의 주간통계에 따르면 올해 HIV/AIDS 신규 감염 신고 건수가 지난해 대비 20.7% 감소했다. 2018년에 비해서도 18%가 감소한 것이다. 한국의 HIV 검사 및 신고가 이뤄지는 기관 중 보건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30%다. 이를 감안할 때 보건소의 대국민 서비스 중단에 따라 HIV/AIDS 검사 및 신고가 감소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전국 모든 보건소에서 HIV/AIDS 무료 및 익명 검사를 제공하고 있다. 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한 환경에서 보건소 접근이 어려워진다는 점은 HIV/AIDS 취약계층의 감염 억제에 경고 등이 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2월 발표된 국내 연구보고서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방기록 빅데이터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HIV 미진단율이 약 37.5%로 나타나면서 검사를 통해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있는 비율은 약 62.5%로 추산됐다. 또 감염 사실을 알고 항바이러스제로 치료를 받은 감염인 비율은 87.5%, 항바이러스제를 통해 바이러스를 억제한 감염인 비율은 90.1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HIV 검사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다.

현재 HIV/AIDS 종식을 위한 전략 중 일부는 국내에서도 달성돼 가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검사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면 신규 감염자 발견이 늦어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치료접근성과 치료효과에도 연쇄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HIV/AIDS 감염 여부는 증상만으로 확인할 수 없으므로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 조기 진단과 치료는 감염인의 건강 유지와 타인에 대한 전파 예방 모두에 효과적이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HIV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HIV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먹는 약으로 개발된 노출 전 예방요법이 도입됐다. 이 약을 매일 복용하며 성관계 시 콘돔 사용을 병행하고, 정기적 상담을 지속한다면 감염의 전파를 막을 수 있다.

코로나 확산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응전하는 것만큼이나, 위기가 장기화하는 동안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빠른 점검과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감염인이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병·의원 검진을 독려하고 지원해 주거나, 자가 검진을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는 것이 좋다. 나아가 이러한 유형의 잠재적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의료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순간적 관리 소홀로 발생한 구멍을 메우기 위해, 더욱 많은 것을 잃고 시간과 자원을 사용해야 되는 일 만큼은 막아야 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