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주에 보내드린 칼럼 ‘세터 A는 ’도대체‘ 왜 공격수 B보다 C를 선호할까? [발리볼 비키니]’(https://bit.ly/37AB0cI)를 읽고 e메일로 질문을 주신 분들이 계셔서 공개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아마도) 세터 A, 공격수 C 팬이신 분들께서 보내주신 질문 가운데 ‘욕설이 단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은’ 질문부터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공격 효율은 공격수만의 기록인가?
“기자님은 세터의 볼 배분을 비판하면서 공격수의 공격 효율만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격수 간 비교가 아니라 세터에 관한 비판이 주라면, 당연히 세터에 관한 기록을 언급해야 하지 않나요. 세터 A는 3년 연속 세트 부문 최고를 달성했고, 올 시즌도 1위입니다.”
그 ‘일정 비율’이 얼마인지는 섣불리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단, 다른 포지션이 아니라 세터가 공을 띄웠을 때는 공격 효율이 올라가는 게 아주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주전 세터가 비주전 세터보다 공격 효율을 더 높이 끌어올리는 것 역시 아주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세터는 공격수가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공을 띄워주는 게 주 임무인 포지션이고,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면 수행할수록 좋은 세터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ABC 칼럼은 세터 A가 세팅했을 때 B, C 선수의 공격 효율을 비교한 것일 뿐 두 선수 공격 효율 자체를 비교한 건 아닙니다. 두 선수의 기본적인 공격 효율 차이를 언급한 건 분명 사실이지만 동시에 세터 A가 세팅했을 때 결과 역시 함께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세터 A의 능력이 들어갔습니다.
● 세터의 세트 기록은 얼마나 의미가 있나?
“기자님도 혹시 세터의 가치를 나타내는 세트 기록이 무의미하다고 보시나요? 이 기록에 의해 한국배구연맹(KOVO)에서는 매년 세터상도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세터 A의 세트 기록은 압도적 1위입니다.”
KOVO에서 시상하는 기준은 ‘세트 성공’ 개수입니다. 이 개수 자체는, 무의미하지는 않더라도,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시도가 늘어나면 성공도 자연스레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세터 A는 △2017~2018시즌 역대 33위(40.1%) △2018~2019시즌 49위(37.8%) △2019~2020시즌 36위(39.7%)에 해당하는 세트 성공률을 기록하고도 △2017~2018시즌 역대 4위(1264회) △2018~2019시즌 5위(1260회) △2019~202시즌 20위(1159회)에 해당하는 세트 성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트 성공률 가운데 얼마만큼이 세터 덕분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 세트 성공률이 낮은 게 전부 세터 탓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래서 세트 성공 자체에 큰 의미가 없는 건 사실입니다. KOVO에서 세트 성공 개수를 기준으로 시상을 하는 건 꾸준히 활약한 ‘성과’를 치하하는 것이지 해당 세터가 ‘능력’이 최고라고 주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공격수가 먼저인가? 세터가 먼저인가?
“기자님은 A, B, C 선수 소속팀이 1패 하는데 세터 A의 잘못된 볼 배분을 언급하셨는데, 역으로 전체 시즌에서 팀이 1위하는데 세터 A의 세트 기록 1위가 기여했다고 보지 않나요? 일부에서는 그거야 좋은 공격수들이 잘 해결해줘서 그런다고 하는데, 세터 A는 전 소속팀에서도 1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공격수들이 세터의 도움을 받았는지 세터가 공격수의 도움을 받았는지 어떻게 확인하겠습니까.”
역대 기록을 살펴보면 세터 A는 △2017~2018시즌 역대 10위(27.6%) △2018~2019시즌 71위(5.8%) △2019~2020시즌 79위(4.3%)에 해당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기간 주전 세터는 89명입니다. 세터 A가 2017~2018시즌 ‘역대급’으로 팀 공격 성공률을 끌어올린 건 사실이지만 그 뒤로는 같은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아주 정확하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배구에서 세터는 야구에서 포수와 비슷하게 결국 ‘우승’이라는 훈장으로 평가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단, ‘세터는 팀 공격 성공률을 끌어올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최근 세 시즌 동안 세터 A가 이런 활약을 선보였다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 B 선수 체력 때문에 세터 A가 적게 올리는 것 아닌가?
“기자님은 B 선수의 높은 공격 효율을 근거로 더 많은 볼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다른 팀 외국인 공격수만큼 몰방(沒放)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높은 성공률과 효율을 유지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 팀 감독님도 이 부분에 대해서 자주 언급을 합니다. 체력 문제 말입니다. B 선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자주 합니다. 즉, 달리 보면 B 선수 체력을 고려해서 누군가(C 선수)는 죽어라 뛰고 있고 2단 볼 처리도 자주 하는데, 그걸 가지고 B에게 볼 안 줘서 불만이다 하면 억울할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기자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건 아주 일리 있는 접근법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 이런 접근법은 팀 성적이 좋을 때만 시도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계속 이 전술을 고집하기에는 B 선수와 C 선수 사이에 공격력 차이가 너무 크게 나니까요.
만약 세터 A가 B와 C에게 세팅한 횟수가 반대였고, B가 추가로 얻은 공격 기회를 모두 실패했다고 가정해도 공격 효율 0.307로 C가 남긴 기록(0.272)보다 높습니다. 실제로 모든 공격에 실패할 리는 없었을 테니까 차이는 더욱 벌어졌을 겁니다.
세터 A가 2단 연결을 맡을 때도 A가 C에게 더 많이 세팅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단,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차이가 나는 만큼 B에게 공이 추가로 올라 왔고 그 공격 기회를 B가 전부 실패했다고 해도 공격 효율 0.255로 현재 같은 상황에서 C 선수 공격 효율(0.231)보다 높습니다. 실제 ‘2단 상황 + 세터 A 세팅’ 때 B 선수 공격 효율은 0.371이었습니다.
그러니까 B 선수 체력 문제가 걱정이라고 해도 지금보다는 공을 더 띄워도 됩니다. (물론 이건 세터 A 선택이 아니라 감독 작전이라 살짝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는 합니다.)
B 선수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공격 효율이 떨어지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공격 시도 횟수가 31번을 넘어가면 공격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니까요.
그런데 이 선수가 41번째 공격을 시도할 때부터 공격 효율이 0.280에 그쳤다고 해도 C 선수 시즌 전체 공격 효율(0.250)보다 높습니다. 세터 A도 이를 모르지 않으니까 20점 이후에 동점~2점 이내 승부를 펼칠 때는 C 선수보다 B 선수에게 공을 더 자주 띄우는 게 아닐까요?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는 B 선수(0.250)가 C 선수(0.375)보다 공격 효율이 떨어졌는데도 말입니다.
● 타임머신을 탄 기레기?
“당신이 그래서 기레기라는 겁니다. 선수 간 불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굳이 ‘공격 효율’을 짚어가며 이리저리 돌려 말하고, 정작 말하고 싶은 불화는 말도 못하고… 배구 30년 보면 뭐 합니까?? 기레기짓만 하고 있는데…”
이 분께는 먼저 사진을 하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발자국이 오목하게 보이시나요? 볼록하게 보이시나요?
인터넷 캡처
이 사진은 ‘AB6IX’라는 4인조 보이그룹 멤버 이대휘가 그룹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띄운 첫눈 ‘인증샷’입니다. 첫눈을 밟고 찍은 사진이니 오목하게 보여야 할 겁니다.
그런데 볼록하게 솟은 것처럼 보인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실제로 한 트위터 사용자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4000명이 넘게 응답을 했는데 선택은 정확하게 반반이었습니다.
트위터 캡처
‘사실’은 분명 하나일 텐데 ‘관점’에 따라 반응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보내주신 e메일에 답을 쓰고 있지 않았겠죠.
저는 어떤 불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아니, 어떤 특정 선수들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일 처음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배구에 대한 ‘일반론’이었습니다. 이렇게 ‘에이스급’ 국내 공격수가 둘인 팀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이 글 뒤에 나오는 답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질문을 주신 분들도 여럿 계십니다.
그런 이유로 ABC 칼럼을 처음 쓸 때 선수들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당당하게 실명을 쓰라’는 주문 같은 건 제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천 번을 봐도 볼록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또 e메일을 보내셨던 19일에는 이미 A, B, C 선수 불화 관련 기사가 나온 뒤니까 저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ABC 칼럼을 처음 송고한 건 이달 7일이었습니다. 12일 뒤에 불화설이 불거질 걸 알고 미리 칼럼을 쓴다? 네, 저도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왜 “옹졸하게 공격 효율이니, 도대체 왜 토스를 안 하느냐느니 혼자 온갖 자료 뒤져가며” 기사를 쓰고 앉아 있었을까요? 똑같은 사람을 보고 누군가는 ‘저 사람 키는 170cm다’라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은 ‘저 사람 키는 180cm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럴 때 진짜 그 사람 키를 알고 싶다면 자를 들고 직접 재보는 게 제일 확실한 길 아닌가요? 제 주장이 맞는지 아닌지 기록을 뒤져보는 건 자를 들고나오는 것과 많이 다른 일인가요?
“조회수 때문에 어그로를 끈다”고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진짜 조회수가 필요하면 프로배구 기사 쓸 시간에 프로야구 기사를 써야 하고, 프로야구 기사 쓸 시간에 정치 경제 사회 기사를 쓰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저는 스포츠 기자지만 데이터를 활용해 다른 분야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조회수도 데이터인지라 조회수도 배구 기록처럼 분석해 보고는 합니다.)
● 남자부와 여자부에서 중요한 기록은 서로 다른가?
“남자부 경기 평균 공격 효율과 여자부 평균 공격 효율은 차이가 꽤 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에서 랜덤 포레스트 방식으로 돌렸을 때 남녀부에서 공격 효율 및 기타 다른 기록이 승리에 대한 기여도에서 가지는 차이점이 있을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2015~2016 시즌부터 2019~202 시즌까지 다섯 시즌 동안 평균 공격 효율은 남자부가 0.339로 여자부(0.250)보다 1.36배 높습니다. 하지만 공격 효율이 1~4 세트 승패에 끼치는 영향력을 100이라고 했을 때 다른 기록 중요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 여자부는 ‘서브 리시브 → 세팅 → 공격 득점’으로 랠리가 한 번에 일이 남자부보다 드물어서 ‘세트당 디그’가 37.5% 더 중요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 분석은 ‘퀵 앤드 더티(Quck-N-Dirty)’ 방식으로 간략하게 알아본 것이라 정확한 결과를 얻으려면 추가적인 분석 작업이 필요합니다.
● 서브 효율이란 무엇인가?
“서브 효율을 쓰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서브 효율이라고 표기하셨는데 서브 효율의 공식이 따로 존재하는 건가요? 블로킹에 대한 효율은 아직 따로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위에 나온 ‘서브 효율’은 우리 서브 때 상대 팀에서 기록한 서브 리시브 효율입니다. 우리 팀 서브를 상대 팀에서 얼마나 까다롭다고 느끼는지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라는 관점에서 이런 기록을 활용했습니다.
이번 분석에는 활용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블로킹은 ‘인원’을 기준으로 효율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상대 팀이 공격을 시도할 때 우리 블로커 가운데 몇 명이 평균적으로 블로킹에 참여했는지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세터 역시 같은 관점에서 ‘블로킹을 얼마나 잘 여는지’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런 접근법이 궁금하시면 ‘[매거진S] 현대캐피탈 ’시스템‘과 ’스피드‘가 만든 10년 만에 우승’(https://bit.ly/34wB9vF)이나 ‘[데이터 비키니] 상대 블로킹 가장 ’잘 벗기는‘ 세터는?’(https://bit.ly/38qakL5)을 참고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 그리고 답변을 드리고 싶었던 고마운 말씀
아래 내용은 ‘ABC 칼럼’을 일반론으로 보고 계시는 독자가 적지 않다는 방증입니다. A, C 선수 팬들께서는 서운하실 수도 있겠지만 ‘역시 B 선수가 최고’라는 내용보다 이런 e메일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더 많이 도착했습니다.
“리포트하신 몇몇 기사를 보았는데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작성한 기사가 매우 눈길을 끕니다. 특히 통계가 빈약한 배구에서 말이죠. 오랜만에 실력 있는 기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흥미로운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데이터를 접목해 배구 기사를 쓰면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예상보다 큰 관심을 가져주셔서 즐거운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기록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내용이 궁금하실 때는 언제든지 연락해주십시오. 성심성의껏 조사해 알려드리겠습니다.
“토스의 정확성과 공격수 선택에서 재능있는 세터가 아쉬운 한국 배구 현실과 데이터와 다양한 시각에서 배구를 다루어 주는 것 자체가 배구 팬으로서 고마울 뿐입니다. 재미난 내용입니다.”
맞습니다. 예전에는 외국인 선수 영향으로 오른쪽 날개 공격수 기량이 떨어지는 일이 많다고 고민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센스 있는’ 세터 유망주도 잘 눈에 띄지 않게 된 느낌입니다. 지도자들에 세터 유망주에게 ‘기술 지도’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도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나름 배구 좀 봐온 팬으로 재능있는 장신 세터에 대한 기대치가 늘 상존합니다. 황동일, 노재욱, 김명관. 황택의는 파격적인 고액 연봉으로 KB를 당장 떠나지 않는다곤 하지만 토스가 좋아졌다는 말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장신의 신체조건이 부담이 되는 것인지 기본기 부족과 볼을 다루는 센스와 수읽기에서 부족한 것일까요?”
다른 이름보다 황동일 때문에 이 질문을 골랐습니다. 과연 황동일이 드디어, 기어이, 마침내, 자신에게 맞은 팀을 찾은 건지 아니면 팀을 옮길 때마다 거의 그랬던 것처럼 ‘초반 반짝’ 현상인지 이번에도 궁금합니다. 세터는 키우기도 어렵지만 평가하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 세터 평가에 대한 고견 있으시면 말씀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ABC 칼럼 관련 내용은 이번 기회에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모두 그때까지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