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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前 시장이 두 번이나 구속을 피한 방법[오늘과 내일/정원수]

입력 | 2020-12-23 03:00:00

“기억나지 않지만 피해자가 맞다면 성추행 인정”
전관 변호사 ‘이상한 방어 논리’에 판사가 기각




정원수 사회부장

“저를 둘러싼 황당한 이야기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떠돌고 있다. 소도 웃을 가짜 뉴스, 모조리 처벌하겠다.”

지난해 10월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부산시는 “개인을 넘어 350만 부산시민을 대표하는 시장과 부산시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는 별도의 입장을 냈다. 오 전 시장은 가짜 뉴스 척결을 위한 변호인단 8명을 구성하고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채널에 대해 강경 대응했다. 유튜브 채널 운영진을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형사 고소했고, 5억 원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이때만 해도 오 전 시장은 ‘가짜 뉴스의 피해자’처럼 보였다.

국회의원 총선거 약 일주일 뒤인 올 4월 23일 오 전 시장은 집무실에서 또 다른 부하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고 시인한 뒤 자진 사퇴했다. 오 전 시장의 사퇴를 계기로 유튜브에서 제기된 성추행 사건도 다시 주목받았다. 부산지방경찰청이 올 8월까지 약 4개월 동안 관련 의혹을 내사했지만 오 전 시장이 시인한 강제추행 외에 추가 범행을 밝혀내지 못하고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그런데 부산지검의 추가 수사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오 전 시장에게 피해를 당한 또 다른 여성이 성추행 피해 사실을 어렵게 진술하고, 검찰이 증거 인멸과 관련한 녹취 파일까지 새로 확보한 것이다. 검찰은 강제추행 외에 무고 혐의를 추가해 오 전 시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신고자가 허위임을 알고서 다른 사람이 형사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수사기관 등에 신고했다면 무고죄가 성립한다. 오 전 시장 측은 18일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추가 추행 혐의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가 맞다고 한다면 인정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무고를 피하려고 형사 고소 당시 허위 사실인지를 몰랐다는 전략적 진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오 전 시장은 구속을 피했다.

오 전 시장의 두 번째 영장을 기각한 부산지법의 김경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지위와 피해자들과의 관계, 영장청구서에 적시된 구체적인 언동을 고려하면 피의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올 6월 경찰이 신청한 첫 번째 영장이 기각됐을 때만 해도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짤막한 기각 사유만 나왔지만 두 번째 영장 때에는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더해진 것이다.

정당한 의혹 제기를 ‘부산시민에 대한 도전’으로 몰아세우면서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해 민형사상 소송전을 벌이는 것은 선출직 공직자의 도리라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오 전 시장에 대한 두 차례 영장심사 과정은 상식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오 전 시장은 올 6월과 18일 두 차례 영장심사만을 위해 법원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원포인트’로 선임했다. 전관 변호사는 올 6월 1차 영장심사 때 “부산시장을 지낸 피의자가 자존심 등으로 자신한테 불리한 건 기억하고 싶지 않고, 실제 안 했다고 믿는 ‘인지부조화 현상’일 뿐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로 오 전 시장을 방어했다. 2차 영장심사 때도 “기억나지 않지만 인정한다”는 방어논리를 폈다. “지병이 있는 73세의 고령”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은 오 전 시장은 자진 사퇴 이후 8개월이 넘도록 아직 기소되지 않았다. 반면 피해자들은 평범한 일상을 잃었고, “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제가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 하고 있다”며 절규하고 있다. 피의자의 처지나 논리가 아니라 피해자의 심정이나 입장도 헤아리는 재판을 기대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