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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해위 별도로 선감학원 진실규명”

입력 | 2020-12-24 03:00:00

일제 ‘부랑아 갱생’ 명분 설립
1982년까지 운영… 인권유린 잇따라
道, 피해자 명단 진실화해위 제출
“중증-만성 질환… 트라우마도 심각”




1960년대 소년들을 강제수용해 노동 착취 등 인권 침해를 했던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김영배 씨(왼쪽에서 네 번째)가 올 4월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경기창작센터에 문을 연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신고센터’ 개소식에 참여했다. 경기도 제공

“저의 어린 시절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정부의 사과를 꼭 받고 싶습니다.”

경기 파주 출신인 김영배 씨(65)는 어린 시절의 끔찍한 경험을 털어놓다가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듯 보였다. 김 씨는 일곱 살이던 1962년 누이가 살던 서울 충무로에 왔다가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경찰들은 “부랑아들을 교화시켜 자활의 기회를 줘야 한다”며 어린이들을 강제로 시설에 넘겼다.

김 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거쳐 이듬해 5월 경기 안산시에 있던 소년 수용시설인 선감학원으로 끌려갔다. 김 씨는 선감학원에서 10시간 이상 밭일과 염전관리 등을 하면서 지냈다. 열 살 무렵 3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좁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강냉이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여름과 겨울을 옷 한 벌로 생활했으며 양말도 없어 발에 동상이 걸리는 것도 일쑤였다. 동료들이 구타와 영양실조로 숨지거나 견디지 못해 바다를 헤엄쳐 탈출하다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김 씨는 1968년까지 선감학원에서 지냈던 6년 동안 혹독한 강제노동과 인권유린을 당하며 생지옥을 경험했다. 김 씨는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지 못했고,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김 씨는 “어린 시절의 강제노역은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현재까지 정신적 트라우마로 너무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 5월 일제강점기 말 조선소년령 발표에 따라 안산시에 설립된 감화원이다. 광복 이후 경기도가 인수해 부랑아 갱생과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도심 부랑아를 강제로 격리·수용했고 1982년까지 운영됐다. 소년 4700여 명이 강제노역에 투입됐으며 구타, 영양실조 등 인권 유린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많은 소년이 희생되기도 했다.

경기도는 최근 김 씨 같은 선감학원 피해자 104명의 명단과 원아대장 등이 담긴 신청서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제출했다. 진실화해위는 올 5월 ‘과거사정리법’이 통과돼 이달 10일부터 선감학원 등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활동을 하고 있다. 김경아 경기도 선감학원대책팀장은 “진실화해위 신청서 접수는 선감학원의 진실 규명 조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앞서 도는 올 4월 선감학원 피해자센터를 개소한 뒤 피해자 104명 중 93명에 대해 연령, 신분, 생활환경, 급여 미지급 등 강제동원 당시 상황과 구체적 피해 사실 등을 조사했다. 주소불명자 등 11명은 제외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60, 70대로 중증질환이나 만성질환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유아기 치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영양 부족에 따른 치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어린 나이의 피해자들 대부분이 옆에서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 주검 처리에 동원돼 공포심에 떨었던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각했다.

경기도는 우선 의료비 등을 지원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8월부터 연말까지 임플란트 치과진료와 심리치유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34명, 65건의 진료가 진행됐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경기도의료원에서 진료를 받는 전국 선감학원 피해자에게 연간 1인당 500만 원 내에서 본인부담금 100%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는 ‘경기도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이재강 경기도평화부지사는 “선감학원의 진실 규명과 피해자·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진실화해위와 별도로 경기도 차원의 종합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