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부랑아 갱생’ 명분 설립 1982년까지 운영… 인권유린 잇따라 道, 피해자 명단 진실화해위 제출 “중증-만성 질환… 트라우마도 심각”
1960년대 소년들을 강제수용해 노동 착취 등 인권 침해를 했던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김영배 씨(왼쪽에서 네 번째)가 올 4월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경기창작센터에 문을 연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신고센터’ 개소식에 참여했다. 경기도 제공
경기 파주 출신인 김영배 씨(65)는 어린 시절의 끔찍한 경험을 털어놓다가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는 듯 보였다. 김 씨는 일곱 살이던 1962년 누이가 살던 서울 충무로에 왔다가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경찰들은 “부랑아들을 교화시켜 자활의 기회를 줘야 한다”며 어린이들을 강제로 시설에 넘겼다.
김 씨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거쳐 이듬해 5월 경기 안산시에 있던 소년 수용시설인 선감학원으로 끌려갔다. 김 씨는 선감학원에서 10시간 이상 밭일과 염전관리 등을 하면서 지냈다. 열 살 무렵 3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좁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강냉이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여름과 겨울을 옷 한 벌로 생활했으며 양말도 없어 발에 동상이 걸리는 것도 일쑤였다. 동료들이 구타와 영양실조로 숨지거나 견디지 못해 바다를 헤엄쳐 탈출하다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 5월 일제강점기 말 조선소년령 발표에 따라 안산시에 설립된 감화원이다. 광복 이후 경기도가 인수해 부랑아 갱생과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도심 부랑아를 강제로 격리·수용했고 1982년까지 운영됐다. 소년 4700여 명이 강제노역에 투입됐으며 구타, 영양실조 등 인권 유린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많은 소년이 희생되기도 했다.
경기도는 최근 김 씨 같은 선감학원 피해자 104명의 명단과 원아대장 등이 담긴 신청서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제출했다. 진실화해위는 올 5월 ‘과거사정리법’이 통과돼 이달 10일부터 선감학원 등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활동을 하고 있다. 김경아 경기도 선감학원대책팀장은 “진실화해위 신청서 접수는 선감학원의 진실 규명 조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앞서 도는 올 4월 선감학원 피해자센터를 개소한 뒤 피해자 104명 중 93명에 대해 연령, 신분, 생활환경, 급여 미지급 등 강제동원 당시 상황과 구체적 피해 사실 등을 조사했다. 주소불명자 등 11명은 제외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60, 70대로 중증질환이나 만성질환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유아기 치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영양 부족에 따른 치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어린 나이의 피해자들 대부분이 옆에서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 주검 처리에 동원돼 공포심에 떨었던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각했다.
도는 ‘경기도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이재강 경기도평화부지사는 “선감학원의 진실 규명과 피해자·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진실화해위와 별도로 경기도 차원의 종합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