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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구 1주택’ 법에 사람들이 화내는 이유[현장에서/이새샘]

입력 | 2020-12-24 03:00:00


여당의 ‘1가구 1주택’ 법안 발의에 민심이 들끓고 있다. 주거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와도 맞지 않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이해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DB

이새샘 산업2부 기자

‘1가구 1주택’을 주거정책 기본 원칙으로 포함시키겠다는 여당의 주거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된 뒤 그 여파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비판하고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런 법안을 발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여당과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 정책 결정의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거기본법의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국민의 주거 안정과 주거 수준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본 원칙으로도 ‘국민의 주거비가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할 것’ ‘양질의 주택 건설을 촉진하고,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할 것’ 등 주로 주거 복지, 주거권 보장을 위한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듯 부동산정책의 목표는 다주택자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 안정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다주택자를 규제한다고 곧 주거 안정이 되지 않는다. 전월세시장이 대표적이다. 보증금 1억 원짜리 원룸을 여러 채 갖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지켜가며 임대수익을 얻는 다주택자와, 강남에서 20억 원짜리 집을 갖고 사는 사람 중 누가 정말로 서민들의 주거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지 따져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그런데 ‘1가구 1주택’ 법안은 단순하지 않은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너무 단순화해 버린다. 모두가 집 한 채씩 가지면 주거가 안정되고, 다주택자는 무조건 투기를 위해 집을 산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1가구 1주택’ 법안은 주거기본법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1가구 1주택’ 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모두가 강남 신축 아파트를 더 쳐다보게 만드는 법”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 채만 가질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것을 가지려 할 테니 더 살기 좋은 곳, 더 투자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수요가 쏠릴 거라는 의미다. 일반인들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결과를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짐작하지 못했다면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백 번 양보해 이번 법안이 ‘선언적 의미’에 그칠 뿐이라 하더라도 그건 그대로 또 문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번 법안에 대한 의견을 부탁하자 “논할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는 법안이라 진지하게 발의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발의된 법안을 보고 또 한 번 정부와 여당의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국민들의 실망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진짜 주거 안정을 이루고 싶다면 ‘1가구 1주택’ 법안 발의로 시장을 들쑤시는 것 외에도 할 일이 많다.

이새샘 산업2부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