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 록 음반 덕후’ 정철씨 우표-지우개 수집하다 中2 팝 입문 웹사전 만들고 사전서적 4권 발간 음반 1만장… 밴드 직구입, 가장 아껴
22일 저녁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만난 정철 씨는 “최근 이사를 했는데 이삿짐센터 아저씨들께 ‘판 모서리가 깨지면 충격 받아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놨다”며 웃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인플루언서 커머스 플랫폼 ‘핫트’를 운영하는 ‘소셜빈’의 서비스기획실장인 정 씨는 음반 마니아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실험적이고 서사적인 음악인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에 통달했다. ‘덕후’가 된 계기를 묻자 ‘단호박’ 대답이 돌아온다.
“덕후는 되지 않습니다. 태어납니다. DNA에 찍혀서 나와요.”
약 1만 장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절반 이상이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 1인 출판사 ‘빈서재’를 세워 ‘백일신론’ 등 일본사 고전 총서도 펴내고 있다.
―사전 전문가다. 음반 정리도 사전처럼 하나.
“세부 장르에 따라 LP장을 세로 열로 구분해 정리한다. 여기 거실장을 보라. ABC순이지만 여기 첫째 줄은 이탈리아, 둘째 줄은 프랑스, 셋째 줄은 독일, 넷째 줄은 북유럽, 다섯째 줄은 영국의 음악가다. 판이 추가돼도 아래 칸으로 밀며 정리하기 좋다.”
―가장 아끼는 음반은?
―주로 어디서 음반을 사나.
“국내에서는 서울 마포구 김밥레코즈, 도프레코드, 메타복스, 이츠팝. 죽치고 앉아 있다보면 (다른 마니아) 형들도 자연스레 만난다. ‘덕후’에게도 사교성, 붙임성이 필요하다. 자가발전만으론 한계가 뚜렷하다. 내가 네이버 재직 시 ‘지식인’ 서비스에 관여해 봤잖나. 늘 어떤 분야든 답변자보다 질문자가 더 귀하다. 바꿔 생각하면, 질문만 공손하게 잘하면 답변해줄 사람은 널려 있다.”
―1970년대 음악에 멈춘 마니아들에게 뒤 세대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를 추천해준다면?
“먼저 포큐파인 트리(영국)다. 1990년대 이후 이 판을 석권한, 가장 핑크 플로이드에 가까운 밴드다. 소리를 끌어내 공간에 꾹꾹 끼워 넣어 부유하는 느낌을 준다. 다음으론 오페스(스웨덴)다. 초기의 블랙메탈을 걷어내고 프로그레시브로 온 최근 음반부터 역순으로 찾아 들으면 좋겠다. 그리고 워블러(노르웨이). 애수에 찬 복고적 사운드가 특징인 심포닉 록이다. 멜로트론을 특히 많이 쓴다.
“편집하면서 큰코다쳤다. 주인공들의 대화는 석학 대담과 다를 바 없다. 일본에서 1970년대 말에 잠깐 나왔던 특수 경마 게임용 LP판, 비틀스 노래 ‘Yellow Submarine’의 온도(音頭·선창과 제창을 하는 일본 특유의 성악곡 형식) 버전 등 일본 현대 문화사의 맥락을 찾아 해설하느라 애먹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