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 파리 특파원
독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64)이 17일 독일 본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루트비히 판 베토벤 탄생 기념 콘서트를 앞두고 한 발언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음악을 넘어, 인류가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영감을 주는 상징적 매개체란 의미였다.
올해는 악성(樂聖)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이다. 베토벤 생년월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그가 1770년 12월 17일 본에서 세례를 받은 기록은 남아 있다. 당시에는 관습상 출생 후 24시간 안에 세례를 받았다. 이 때문에 하루 전인 16일 베토벤이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2월이 되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프랑스 지인들은 기자에게 “코로나19 때문에 250주년 관련 공연들을 유튜브로만 봤다”며 “베토벤의 곡들은 유럽의 역사 그 자체인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럽의 운명이 갈린 변곡점마다 베토벤의 작품이 있었다. 1789년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베토벤은 자유와 평등 정신을 담아 교향곡 5번(운명)을 작곡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2017년 5월 대선 승리 연설에서 이를 오마주해 베토벤 곡을 크게 틀었다.
베토벤 작품이 좋게만 쓰인 것은 아니다. 나치 정권은 1938년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후 연일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를 공연케 했다. 베토벤 음악을 통해 독일 민족의 우월성과 나치즘을 홍보하려는 의도였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중 ‘환희의 송가(Ode to Joy)’가 연주됐다.
이 곡은 유럽연합(EU)의 성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EU 전신인 유럽공동체(EC)는 1985년 이 곡을 ‘하나의 유럽’을 상징하는 유럽가(歌)로 공식 채택했다. 지난해 7월 유럽의회 개원식에서 이 곡이 연주되자 ‘브렉시트’를 옹호하는 영국 의원들은 등을 돌려 논란이 됐다.
유럽 주요국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커졌다. 그러나 전염력이 70%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다시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청력 상실마저 이겨내고 위대한 곡을 완성한 베토벤을 생각하면 극복해내지 못할 역경은 없다. 내년에는 코로나19에 승리했다는 ‘환희의 송가’가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