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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야구만이 살길이다[현장에서/김배중]

입력 | 2020-12-25 03:00:00


팬 사찰과 갑질 논란에 휩싸인 프로야구 키움의 허민 이사회 의장. 동아일보DB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대형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이 쏟아지며 열기가 달아올랐던 스토브리그 분위기가 최근 차가워졌다. 키움의 구단 사유화와 팬 사찰 의혹 논란 때문이다.

키움 소속이던 이택근(은퇴)이 지난달 말 “키움이 품위를 손상했다”며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키움의 징계를 요청했다. 허민 키움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6월 고양 2군 구장에서 2군 선수와 캐치볼을 한 영상이 팬에 의해 외부에 알려지자 당시 키움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영상을 유출한 제보자를 색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허 의장의 ‘야구 놀이 갑질’로 주목받은 이 사건은 올해 손혁 전 키움 감독이 시즌 막판 돌연 사퇴하며 팀 순위가 2위에서 5위로 떨어지며 집중적으로 재조명됐다. 허 의장이 팀에 과도하게 개입하며 구단을 사유한다는 비판이 일었고, 소속 선수까지 제보자에 대해 알아보라는 구단의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에 나서며 단순히 쉬쉬하고 넘길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키움은 올해 3월에도 영구 실격으로 야구계에서 퇴출당한 이장석 히어로즈 전 대표의 ‘옥중 경영’ 의혹으로 벌금 2000만 원 징계를 받기도 해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키움 사태에 대한 KBO의 미온적인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22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키움의 징계 여부, 수위 등을 논의한 KBO는 이틀 넘게 결론을 유보했다. 22일에는 키움의 소명 기회 요청을 받아들여서 미뤘지만, 이튿날에는 정운찬 KBO 총재가 해당 사안에 대해 조금 더 숙고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해서 또 미뤄졌다. 야구규약 제151조에는 품위손상 행위를 두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총재가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KBO는 도박, 음주운전, 병역비리 등 과거 분명했던 징계 사유와 달리 팬 사찰, 구단 사유화에 대해선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제재 수위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31일 임기가 끝나는 정 총재가 골치 아픈 현안을 차기 총재에게 넘기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취임 초부터 정 총재가 ‘클린 베이스볼’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걸 감안하면 오히려 유종의 미가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KBO리그는 코로나19 직격탄에도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했다. KBO와 구단, 선수가 철저하게 방역에 신경 쓴 결과다. 팬들은 비록 경기장을 찾기는 쉽지 않았어도 KBO리그를 향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랬기에 최근 불거진 키움 사태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더욱 안타깝다.

키움 사태는 특정 구단만의 일탈이 아닌 모든 KBO리그 구성원이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돼야 한다. 깨끗한 야구는 KBO리그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핵심 과제다. 그래야 선수는 야구할 맛, 팬들은 응원할 맛이 난다.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