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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화재-문잠김 불안한 전기차… 제조사-소방당국 큰 숙제[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12-25 03:00:00

“전기차, 안심하고 타도 될까요?”




이달 9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테슬라 ‘모델X‘ 차량이 벽면에 충돌하면서 발생한 화재를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진압하는 모습. 용산소방서 제공

김도형 산업1부 기자

“전기차에서 자꾸 불이 난다는데 안심하고 타도 될까요?” “전기차는 사고가 나면 문을 못 연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대표적인 친환경차로 각광받는 전기차가 올해 국내 누적등록 10만 대를 넘겼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코나EV’의 연이은 화재와 리콜 그리고 최근 테슬라 차량의 충돌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한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덩달아 커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과 자동차 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와 비교했을 때 전기차가 더 위험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전기차의 안전 문제는 세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내연기관차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진 전기차가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내연기관차에 비해 안전 규제가 느슨한 전기차의 안전 기준을 뜯어봐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는 사고가 나면 높은 전압의 배터리 때문에 화재 우려가 있고 이런 배터리 화재는 진화가 쉽지 않다는 점, 유독가스를 배출한다는 점 등이 대표적인 안전 문제로 꼽힌다.

○ 10만 대 넘긴 전기차… ‘고전압 배터리’가 문제


국내에 등록된 승용 순수전기차(EV)는 지난해 말 8만7000대를 넘긴 데 이어 올해 8월에는 10만9000여 대를 기록했다. 국내의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가 2300만 대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은 전기차 비율이 높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에만 3만 대 이상이 팔리는 등 전기차 보급 속도는 갈수록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안전 문제의 핵심은 바로 ‘고전압 배터리’다. 전기차에서 구동모터를 돌리는 데 쓰이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핵심 부품이다. 전기차는 각종 전자장비를 작동시키는 12V 안팎의 저전압 배터리와 더불어 구동용으로 400V 안팎의 고전압 배터리를 사용한다.

국내에 시판 중인 전기차는 대부분 이 고전압 배티리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쓰고 있다. 리튬이온이 전극을 이동하면서 충전과 방전이 이뤄지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대표적인 2차전지다.

문제는 이 리튬이온 배터리가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냉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배터리 내부의 분리막이 손상되는 경우, 외부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경우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분리막이 손상돼 내부에서 음극과 양극이 만나면 배터리가 가열되면서 결국 화재로 이어지는 것이다.

스마트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용량 전력을 소모하는 전기차에는 스마트폰 배터리 수천 개에 해당하는 배터리가 들어간다. 그만큼 전기차 배터리의 열폭주가 큰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면서 리콜 조치가 이뤄진 현대자동차 코나EV의 경우 고전압 배터리 문제로 화재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이다. 배터리 자체의 문제인지, 이를 장착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인지는 정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9일 서울 용산구에서 발생한 테슬라 ‘모델X’ 차량의 충돌 후 화재 사고는 고전압 배터리가 외부 충격을 받으면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다.

○ 배터리 보호에 힘쓰지만… “안전 장담은 못해”


이런 문제는 전기차 제조사들에 큰 고민거리다. 국내외에서 14건의 화재가 발생한 현대차의 코나EV는 결국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업데이트하고 문제가 있는 배터리는 교체하는 방식의 리콜을 진행하면서 일단락됐다. 리콜 이후 차량에서는 아직 화재 사례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외부 충격이 없는데 전기차 배터리에서 불이 나는 문제는 해외의 전기차에서도 간혹 관찰되는 문제”라며 “화재 확률은 전기차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도 최근 쉐보레의 대표적인 전기차 모델 ‘볼트EV’의 화재 가능성 때문에 리콜을 실시한 바 있다.

전기차 제조사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역시 충돌 시 안전 문제다.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고전압 배터리에서 불이 나지 않도록 해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사고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차량 측면으로 분석된다. 충돌 사고에서 차량의 전면과 후면은 비교적 공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자동차의 프레임이 충격을 흡수해 고전압 배터리에 도달하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측면 사고에선 이런 완충 공간 없이 상대적으로 강한 충격이 배터리에 가해질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고전압 배터리를 보호하는 문제”라며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발화 및 폭발 여부를 확인하는 충돌 시험, 수분과 소금물에 대한 수밀·침수 시험, 배터리를 직접 불에 노출시켜 폭발 여부를 검증하는 연소 시험 등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테슬라는 동일한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보면 전기차의 화재 확률이 내연기관차의 10분의 1 이하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화재 확률 차이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차는 도입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충돌에 따른 화재 확률과 내연기관차와의 위험성 비교 등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조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튬이온 배터리의 특성상 전기차 사고에서 화재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통된 지적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충돌 테스트는 비교적 저속의 규정된 속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사고와 고속 충돌 사고 등으로부터 배터리를 온전히 보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고전압 배터리를 운전자와 탑승자의 좌석 밑에 설치하는 것도 위험 요인 중 하나다. 내연기관차는 충돌로 인한 화재가 엔진이 있는 차량 앞부분에 집중돼 차량 내부로 유독가스나 불길이 번지는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전기차는 좌석 밑에서 고열과 함께 화재가 발생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 전자기기 증가도 ‘위험요소’… “소방당국도 대비해야”


9일 서울 용산구에서 발생한 테슬라 ‘모델X’ 차량의 사고는 전기차에서 불이 났을 때 문을 열기 힘들다는 논란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테슬라의 전기차는 화재 등의 사고로 내부 전기 공급이 끊기면 안에서 스스로 뒷문을 열고 나올 수 있는 기계적 장치가 아예 없거나 복잡하게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대차와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한 기존의 전통적인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기존 제조사들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모두 물리적·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문 손잡이를 이용해 전력이 끊어져도 내외부에서 문을 열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는 차량 내부에 전기장치가 늘어나는 이른바 ‘전장화’가 함께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어서 이로 인한 문제가 커질 여지는 남아 있다. 이호근 교수는 “자동차는 앞으로도 더 많은 전자장비를 쓰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안전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기존의 기계적인 방식을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대가 제조사와 차량 이용자뿐만 아니라 소방당국에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연기관차 화재와는 특성이 전혀 다른 화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미리 대비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물로는 진화하기 힘들다는 점과 고전압 배터리의 누전으로 인한 감전 우려, 화재 시 유독가스 배출 등의 문제가 있어 내연기관차 화재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당국에도 배터리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새로운 소화기·소화액 도입과 사고 시 전력 차단 방법을 숙지하고 독성물질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등의 과제가 주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배터리 기술이 전기차 안전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될 경우 자연스레 화재 위험도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화재 위험이 적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현재도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지만 주행거리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김도형 산업1부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