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몇 년 전 관광회사에서 일할 때 외국인 관광객들을 인솔해 ‘크리스마스 걷기 투어’를 한 적이 있다. 청계천 입구부터 롯데백화점 앞, 신세계백화점 앞, 남대문시장 등불을 보고 힐튼호텔 로비에 있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걷기가 끝났다. 음악과 어우러진 서울 야경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올해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빨간 패딩을 입고 구세군 모금 활동을 하는 봉사자는 호주에서는 잘 보지 못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봉사자들이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르는 대신에 종만 흔든다는 점이다.
올해 ‘언택트’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언택트는 비대면 또는 사람과의 접촉을 지양한다는 뜻이다. 감염 예방을 위한 언택트 지침이 있어서 거의 모든 연말 행사가 중지되거나 연기된 상태다. 쓸쓸한 성탄절이 될 듯하다.
매년 12월 초 주한영국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하는 크리스마스 점심 파티에 지난 5년 동안 계속해서 참석했다. 이 파티 역시 엄청 재미있었다. 2017년에는 산타 할아버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즐거움도 이번엔 포기해야 했다.
교회에도 못 갔다. 아내와 함께 다니는 국제교회가 있다. 이 교회의 목사는 유럽의 크리스마스 전통을 따라 예배를 진행한다. 매년 크리스마스트리를 교회 사람들과 함께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즐겁게 불렀다. 크리스마스 4주 전 ‘강림절’ 기간에는 매주 예배 중에 어린이 한 명이 나가서 동그랗게 서 있는 4개의 강림절 촛불을 일주일에 하나씩 켜곤 했다. 매주 촛불을 하나씩 켜나가다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네 번째 촛불과 가운데 있는 제일 큰 크리스마스 촛불을 밝힐 때의 감동이란. 올해는 이런 행사를 온라인으로 할지도 모르겠다. 원래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온라인 사이트를 찾아볼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수도권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실시되자마자 연말 파티를 포기해야 했다. 파티 참석 인원은 15명 정도로 예년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하루 1000명 선을 넘고 나서 모든 걸 접어야 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령이 수도권 일대에 떨어지자 작은 모임도 불가능해졌다. 최근 한 외국인 친구가 연락해서 나와 아내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아마 크리스마스와 연말 사이쯤 초대할 생각이었을 텐데 집합금지령 때문에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소박하고 고요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아내와 고양이와 ‘집콕’하면서 수프얀 스티븐스의 크리스마스 음악을 유튜브로 듣고 슈톨렌에 버터를 바르며 집에서 만든 따뜻한 커피를 마실 것이다. 곧 한국에 올 백신이 우리에게 늦었지만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리라 믿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