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건축가상’ 수상 김세진 소장 완도 해양체험관-체부동 문화센터… 원래 그 자리 오래된 건물처럼 설계 “종이 위에 자신의 역량 쏟아내고 조금씩 나아가면 언젠가는 성취”
김세진 지요건축 소장은 “땅과 건축주를 마주한 뒤부터 종이 위에 무언가를 처음 그려내기 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채우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건축가는 잘 비워놓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성 들여 비워놓은 공간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고 채우는지에 대해 건축가가 관여할 수는 없다. 실물의 표피가 아닌 공간을 눈여겨보아 달라는 바람 또한 무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상’의 올해 수상 세 팀 중 하나인 지요건축사사무소 김세진 소장(42)은 표피와 외양의 치장에 거리를 두고 꼼꼼히 비우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인물이다. ‘종이의 쓸모가 사라질 것’이라는 무책임하고 섣부른 미래 예측이 나도는 시대에 ‘종이의 집요함(지요·紙拗)’이라는 표제를 사무소명으로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건축 작업의 결과물은 입체의 공간이지만 설계의 출발, 진행, 완료는 모두 평면의 종이 위에서 이뤄지고 기록된다. 건축주의 의지와 자본, 시공자의 기술과 노동 사이에 자리한 건축가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영역은 바로 그 종이 위라고 생각한다. 더욱 집요해야 하는 시간은 종이 위에 무언가를 끄집어내 표현하고 기록하기 전까지의 시간이다.”
“종이 위에 한번 선을 그으면 아무리 깨끗이 지워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건물 역시 일단 지어지면 돌이키지 못한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무슨 일에든 이것저것 여러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고민을 통해 찾아낸 길의 방향을 결말의 궤적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꼼꼼하게 관철시킬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뭐든 깊이 오래 고민할수록 침묵하며 덜어내게 되기 마련이다. 김 소장이 설계한 전남 완도군 해양생태체험관(2017년)과 서울 종로구 체부동 생활문화센터(2018년)는 스스로를 뚜렷이 드러내기를 삼가면서 주변의 건물, 거리, 바다와 어울려 원래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른 듯 놓인 건물이다. 젊은 건축가상 심사위원단은 김 소장의 작업에 대해 “선하고 진지한 인상의 공간을 보여준다. 공공건축 프로젝트가 태생적으로 갖는 한계를 특유의 치열함으로 돌파하면서 담백한 절제로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고 평했다.
건축가의 손을 떠나는 결과물은 실제 공간을 만드는 방법을 적은 ‘종이 설명서’다. 모든 세부를 더할 나위 없이 꼼꼼하게 계획하지만 건축가가 제 손으로 벽돌을 옮겨 쌓을 수는 없다. 김 소장은 “계획과 실물의 간극은 나뿐 아니라 모든 건축가가 끌어안고 가는 고민이다. 목표를 잃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간’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