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설계한 조선의 계획도시 수원화성 정조는 뛰어난 군주이자 최고의 풍수지리가 산의 얼굴에 자리한 화성행궁, 산의 뒷면에 배치한 경기지사 관저
정조 임금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개최한 곳으로 유명한 화성행궁의 봉수당. 수원=안영배 논설위원.
수원은 역사적으로 조선 후기에 가장 주목받는 도시였다. 정조 임금은 한양 다음 가는 신도시를 만들기로 하고, 대상지로 수원을 선택했다. 1793년 수원도호부를 유수부로 승급시키고, 1796년 이곳에 화성(華城)과 행궁(行宮)을 지었다. 그러나 건물을 완공한 지 4년 만에 정조는 갑자기 숨을 거뒀다. 더불어 수원을 최고의 신도시로 만들겠다는 정조의 꿈도 수장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번 수원특례시 지정 조치는 220여 년 동안 잠자고 있는 정조의 꿈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까.
● 정조가 꿈꿨던 계획 신도시
수원화성 성곽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받고 있는 방화수류정. 수원=안영배 논설위원.
화성행궁의 주산인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 수원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수원=안영배 논설위원.
이처럼 수원화성은 자족 기능을 갖춘 조선 후기 최고의 계획도시였다. 생산과 상업 기능을 고루 갖춰야만 도시가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수원화성이 완성된 날인 10월 10일을 ‘도시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수원화성은 오늘날의 수도권 신도시와 유사한 기능도 갖고 있었다. 지정학적으로 수원은 한양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한 거점도시였다. 따라서 수원화성이 성공한다면 서울(한양)의 기능을 남쪽으로 확장하고 범(凡) 한양권(수도권)을 구축하는 위성도시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정조는 또 이런 성과를 전국적으로 확대 적용하려는 의지까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정조의 풍수 안목
‘효’를 강조하기 위해 봉수당 내에 만든 정조 임금 밀랍 인형. 수원=안영배 논설위원.
정조의 풍수안(風水眼)으로 행궁을 살펴보자. 행궁은 서쪽의 팔달산을 주산(主山)으로 삼아, 동쪽을 바라보는 형태다. 동쪽 맞은편으로는 직선거리로 600m 남짓한 지점에 봉돈(烽墩·동2포루와 동2치성 사이)이 들어선 언덕이 있다. 나지막한 언덕은 한 일(一) 자 모양으로 가로로 길게 누워 있는 모양새다. 지금은 행궁 앞으로 많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풍수에서는 이런 모양을 일자문성(一字文星)이라고 한다. 특히 앞산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정조 역시 ‘홍제전서’에서 일자문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행궁이 풍수적 이유로 서좌동향(西坐東向·서쪽에 자리 잡고 동쪽을 바라봄)으로 배치됐음을 알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화성전도. 화성과 해궁의 당시 모습이 묘사돼 있다.
용두암은 지금도 그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수원 광교산 줄기가 용이 꿈틀거리듯 뻗어내려 자그마한 둔덕을 이룬 곳이 용두암이다. 바로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는 정자가 들어선 곳이다. 수원화성의 성곽 구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에는 수원천이 휘돌아나가는 연못인 용연도 있다. 정조가 직접 지휘해 만든 용연은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뱃놀이를 즐길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이곳은 1919년 수원 3·1독립운동의 발원지로서, 역사적 의미도 갖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지형지세를 중심으로 풍수를 반영해 지은 풍수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 팔달산 앞면의 행궁과 뒷면의 경지지사 관저의 풍수 길흉
봉수당 정문인 중양문. 수원=안영배 논설위원
역대 경기지사들이 머무는 이 관사 터는 정조가 수원화성을 조성할 당시만 해도 나병환자를 격리하거나 시신을 안치했던 자리였다. 일제강점기 때도 전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던 곳이었다.
이곳은 풍수적으로 봐도 좋지 않은 터다. 산을 끼고 마을이나 건물이 들어설 때는 대체로 산의 얼굴인 앞면에 자리잡게 마련이다. 산의 등에 해당하는 뒷면은 지형이 가파르거나 땅 기운이 험해 보통 꺼린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팔달산의 동쪽으로 행궁을 앉힌 것도 이곳이 산의 앞면이기 때문이었다.
수원화성 지도. 그래픽=강동영 기자
정조의 꿈을 담고 있는 수원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히 크다. 한반도의 배꼽자리, 단전(丹田) 혈자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원이 새롭게 부활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만큼 밝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영배 논설위원ojong@donga.com